“공개된 정보·차익 없었다”… 투기꾼들 변명, 법원서 안 통했다

입력 2021-03-22 04:07

“공개된 개발 계획이었다. 땅 주인에게 들은 정보였다. 실제 차익은 없었다.”

부동산 투기 관련 판례에 등장하는 피고인들의 항변은 비슷했다. 개발 정보가 알려져 있었으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실현된 이익이 없으므로 돈을 내놓을 수 없다는 핑계도 흔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부동산 투기 의혹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을 때도 유사한 변명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개발 계획의 공개성과 투기 당시 기대이익 여부를 엄격히 따져 왔다. 개발 정보가 어렴풋이 공개돼 있던 상황이라도 공무원이 세부내용을 알고 이용했다면 손에 쥔 차익이 없어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업무와 투기 사이 뚜렷한 개연성도 불법투기의 가늠자가 됐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 광역시의 군수 A씨는 지역 내 개발제한구역 해제 정보를 미리 알고 2003년 6월 동생과 지인들에게 토지 6필지를 9억원에 사들이게 했다. 매입금액 중 4억5000만원은 본인이 댔다.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이미 언론을 통해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된다는 내용이 공개됐었다”고 주장했다. 법이 정한 ‘비밀’에 해당 정보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개발제한구역이 풀리는 범위가 공개되지 않은 이상 비밀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어느 지번의 토지가 개발제한구역 해제 예정지에 확정적으로 포함되는지는 A씨가 땅을 사고 4개월 뒤에 공개됐다.

차익이 없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A씨는 지역에 투기 소문이 나자 투자금만 반환받고 이후 땅에 대해서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A씨가 건넨 정보로 지인과 동생들은 몇 달 만에 7억원의 전매차익을 봤다. 법원은 이에 대해 “미래 지가의 급등으로 인해 실현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기대이익을 취득한 점은 분명하다”며 전매차익의 절반인 3억5000만원은 A씨가 토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개된 개발 계획의 범위를 엄격히 보는 법원 판례는 또 있다. 시청 공무원 B씨는 2002년 2월 도로개설 계획을 알고 아내 명의로 3억7000만원에 땅을 산 뒤 1년7개월 만에 12억원을 붙여 팔았다. B씨는 “도로개설 계획을 주민 대부분이 알고 있었고, 실제 현장에도 노선 표기를 위해 말뚝이 박혀 있었다”는 등 비밀정보가 아니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6년 “말뚝 등의 표시만으로는 일반인이 구체적인 노선계획안을 알 수는 없다”며 B씨가 비밀을 이용해 투기한 게 맞는다고 결론 내렸다. 시청 건설과인 B씨가 도로개설 관련 정보가 오가는 업무회의에 참석한 만큼 ‘업무 중 알게 된 정보’로 볼 이유도 충분하다고 보고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B씨는 토지 매입 전에 난 개발제한구역 해제예정공고로 인한 상승분(4억6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차익도 추징금으로 내야 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