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권 소중하다면서… 여성결정권이 생명권보다 우위?

입력 2021-03-23 03:06
지난해 11월 대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태아생명 보호 행사에서 한 어린이가 낙태반대 홍보물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 기도를 하면서 국회에서 조속히 낙태법 개정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했다. 그러던 중 보건복지부 공무원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차관님, 만약 1996년에 마감했던 가족계획사업을 10년 일찍 접었더라면 합계 출산율 1% 미만의 인구절벽 위기상태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은 1962년 경제개발계획에 포함될 정도로 국가정책이었다. 국가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은 96년까지 추진됐고 한국사회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 결과 합계출산율은 83년 이미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으로 감소했고, 96년까지 1.7명 내외의 낮은 출산율을 유지했다. 그리고 인구억제중심의 가족계획사업은 사회적 수명을 다하고 96년 인구자질 및 복지증가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사라졌다.

가족계획사업은 60년대 이후 산아제한뿐 아니라 가난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사실상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한 모자보건법(1973년 제정)에 따라 사업의 날개를 단 듯 확대됐다. 정부는 산아제한을 위한 수술비 지원은 물론 아파트 분양 우선권 제공 혜택까지 줬다.

당시 예비군 훈련장에선 정관 시술을 실시하는 것이 흔한 모습이었다. 이처럼 사실상 낙태 합법화를 통해 15~44세 유배우 여성의 낙태경험율은 71년 26%에서 79년 48%, 85년 52%, 91년 54%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국가기록원의 가족계획사업 실적을 보면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74년부터 81년 사이에는 한 해 평균 4만여명이, 82년에는 14만1259명, 83년 24만4666명, 87년에는 18만 명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다가 89년 7만명으로 감소추세를 보이다 94년부터는 700명대로 급감했다. 이후 가족계획사업의 낙태 통계는 없다.

한편, 53년 형법의 낙태죄 제정 당시에도 있었던 낙태죄 전면폐지 운동은 페미니즘 대중화에 힘입었고,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2012년 낙태죄의 헌법합치 결정이 내린 지 6년도 되지 않아 모체에 의존적이기는 하나 엄연히 다른 개체인 태아의 생명권은 위기에 내몰린다. ‘자궁은 내 것이라는 주장’을 앞세운 과도한 여성주의 정치에 휘둘려서 말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태아 생명을 죽였던 가족계획사업이 또다시 부활하고 있다. 인구절벽 시대에 다시 정부가 앞장서서 사실상 낙태죄 전면 폐지를 의미하는 법안(무조건 낙태 14주, 사회경제적 사유포함 24주)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국회도 팔짱을 끼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낙태 관련법 개정을 놓고 형식적 공청회만 개최하고 헌법불합치 판결에 의한 법 개정시한(2020년 12월 31일)을 넘겨버렸다. 그리고 태아 생명을 정치적 유불리 잣대로 저울질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낙태죄 전면폐지에 앞장서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낙태죄 존치는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낙태죄를 비범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 개정 등 입법에 관한 사항은 국회의 소관인 바, 이후 인권위가 이와 관련해 검토 중인 내용은 없다”는 무책임한 입장을 내놨다.

70, 80년대 가족계획사업을 앞세워 태아생명을 거리낌 없이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현재의 낙태죄 전면 폐지 운동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여성의 기본권 외에 태아의 생명권은 고려하지도 않는 국가인권위원회는 70년대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행태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프리섹스를 주장하며 미국 사회에 적잖은 폐해를 입힌 급진 페미니즘은 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까지 이끌어 냈다.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결정권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낙태 시술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태아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낙태 옹호론자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만 앞세운다. 그렇다면 태아의 생명권은 어찌하자는 말인가. 사람을, 인권을 소중히 여긴다면 생명권이 자기결정권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게 상식 아닌가.

출산이라는 사적이고 고귀한 행위는 과거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희생됐다. 가족계획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적인 정책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고귀한 행위가 낙태죄 전면폐지로 또다시 위협받고 있다.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급진 여성주의 정치인들에 의해 정치적 소재로 전락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정작 국가의 미래인 태아는 보호받지 못하고 법적 사각지대로 몰리고 있다. 가장 힘없는 약자, 인권이 보호돼야 할 약자 중의 약자인데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나 몰라라 한다.

사회 가치 규범은 한번 무너지고 나면 되돌리는 데 엄청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국회와 정부 정책 입안자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태아는 세포인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과 대가를 지불한 뒤에야 정상적으로 국가를 경영할 것인가. 태아의 생명권은 정말 인권에 끼지도 못하는 하찮은 것이란 말인가.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행동하는프로라이프 상임대표)

[낙태죄 개정이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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