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무시당하는 강도의 신앙

입력 2021-03-23 03:04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의 신앙이 평가 절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 죄 속에 살다가 죽기 직전 예수 믿고 가까스로 구원받은 신자의 본보기로 제시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수 옆에 달린 행악자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은혜의 기회를 미루고 거부하다가 믿은 게 아니라 첫 번째 은혜의 기회에 믿은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최악의 믿음이 아니라 최선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여러 면에서 참된 신앙의 본이 됩니다.

먼저 그는 주님을 메시아라고 믿기 어려울 때 믿었습니다. 주님이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고 많은 병자를 고칠 때 허다한 사람들이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 달린 주님을 보고선 메시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구원해보라 외쳤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메시아는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능력의 메시아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무력한 메시아는 원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낮아지고 비참해진 주님을 메시아로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신앙입니다. 기적이지요. 십자가의 첫 번째 열매였습니다. 회심한 강도는 아무 선한 일을 하지 못하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탁월한 회심의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이가 주님을 버리고, 수제자 베드로까지 주님을 버리고 떠났을 때, 이 행악자는 주님 곁에서 주님의 유일한 위로자와 동반자가 됐습니다. 주님 자신의 고난의 첫 열매가 이 행악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보며 얼마나 위로를 받으셨겠습니까.

그는 옆에서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님을 변호하고 주님의 의로우심을 증거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비방할 때 홀로 주님 편에 서기는 어렵습니다. 군중심리에 편승해 세파에 떠밀려 다니는 철새 같은 교인이 많습니다. 기독교가 이 사회에 인기 있는 종교이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사회 생활하는 데 유익하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회생활에 손해가 되면 철새 교인들은 교회를 떠납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신앙이 대세를 이룰 때, 홀로 역행해 십자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회심한 강도는 주님과 십자가 죽음의 동반자였던 동시에 낙원으로 들어가는 동반자였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주님의 마지막 친구이자, 천국에서 주님의 첫 번째 친구였습니다. 평생 죄악으로 점철된 인간이 십자가 예수를 의지하는 연약한 믿음으로, 단번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으로 들어가 영원한 복락과 영광을 누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행악자인데 다른 이는 영원한 고통과 비극이 있는 어두운 곳으로 내던져지게 됐습니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완전히 달라지게 했습니까. 전적으로 십자가의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 죄인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십자가에서 받으셨기에, 죄인이 의인의 자격으로 낙원에 들어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강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십자가의 은혜와 영광을 희미하게나마 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약한 믿음이라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위대한 결과를 산출합니다. 그것을 보고 믿은 이는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믿지 않은 이는 영원한 형벌과 비극을 맛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좌우에 달렸던 행악자는 어떻게 보면 전 인류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중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또는 영원한 형벌로 나뉘게 됩니다.

박영돈 목사 (작은목자들교회)

◇작은목자들교회는 서울 신림동에 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에 속해 있습니다. 박영돈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 교수를 역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