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옷이란 원래 입을 사람에게 맞춰 만드는 것이었다. 헐렁한 천조각으로 보이는 고대의 옷도, 몸에 꼭 맞춰 입었던 중세에도 방식은 달랐지만 옷은 입을 사람에게 맞춰 만들었다. 산업혁명으로 옷을 대량 생산해 공급하면서 신체의 평균 사이즈 몇 개를 선정해 기성복을 만든 것은 당시 대단한 혁신이었다. 이후로 소위 ‘표준 체형’에 맞춰진 옷 중 나와 가장 비슷한 사이즈를 골라 소매길이나 허리폭을 수선하는 일이 당연해졌고, 언젠가부터는 그 표준 사이즈에 맞지 않는 내 몸을 탓하거나 내 몸을 옷에 맞추려 애쓰는 시대가 됐다.
머지않아 비효율을 걱정하지 않고 옷을 나에게 맞춰 입는 게 당연해지는 때가 다시 올 것 같다. ‘패션 스마트 팩토리’ 구상이 그런 기대를 가능하게 한다. 고객이 알려준 신체 사이즈와 취향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가장 편하고 보기 좋은 디자인과 패턴을 제시해주고, 그 자리에서 기계가 옷을 만들어 바로 고객에게 보내주는 프로세스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빠른 속도로 현실화돼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실부터 옷감, 디자인, 제조, 유통, 테크놀로지까지 패션산업 전 분야에서 탄탄한 기반을 가진 패션 강국이다. 특히 서울 동대문에는 없는 게 없고 안 되는 게 없다. 오늘 디자인한 옷이 내일 완성품으로 나오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열정적 디자이너와 패션 피플들이 가득하다. 누군가 이런 기반에 스마트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고 결합할 동력을 제공해준다면 꿈같은 일들이 곧 이뤄질 텐데 패션 혁신을 적극 주도하는 추진체가 없는 게 안타깝다.
이미 뉴욕, 런던, 암스테르담과 같은 도시는 ‘패션혁신클러스터’를 집중 지원해 가시적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그래서 당장 열릴 서울시장 선거에 관심이 간다. 종로구와 중구, 동대문구, 중랑구까지 퍼져 있는 패션 산업 인프라를 잘 모아 새로운 패션 혁신 도시를 꿈꾸게 해줄 시장님을 기대해 본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