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광동 (5) 브뤼셀에서 드린 부활절 예배는 잊지 못할 ‘회심의 날’

입력 2021-03-23 03:02
김광동 대표가 2009년 벨기에 브뤼셀 인근 워털루 정원을 재방문해 번역가인 부인 윤미기 권사와 나란히 서 있다.

1991년 3월 31일 부활주일은 내 평생 잊지 못할 하루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척교회인 브뤼셀선교교회에 다닌 지 4개월쯤 된 시점이었다. 부활절을 맞아 기존 벨기에 한인교회와 우리교회가 합동으로 예배를 드렸다. 교민들이 화합할 좋은 기회로 여기고 예배 준비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부활절 당일엔 이상하게도 설교 말씀이 내 귀에서 심장까지 엄청난 속도로 직진하는 듯했다. 세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죽음은 죄의 대가요 죽고 나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니 이를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정도의 평범하고 복음에 충실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성경에 기록된 복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내게 친히 들려주시는 말씀 같아 두렵기도 하고 벅차기도 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손끝이 떨렸다. 히브리서 4장 12절처럼 말씀이 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회개와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주체할 수 없는 환희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성령 체험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날 이후 성경이 읽고 싶어지고 주일예배가 기다려지고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잊고 있던 스무 살 무렵 일이 불현듯 생각났다. 67년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가족들이 살던 신탄진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작은 언덕 위 교회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화여대 김활란 박사 초청 심령 대부흥회’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대면 이웃 학교 아닌가. 김 박사가 무슨 일로 이 가난한 동네까지 오셨을까. 어디, 어떻게 생기셨는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 술기운에 혼자 이렇게 생각하며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만치 앞에 모시 한복을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단아한 모습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에 나도 멋모르고 긴 줄 뒤에 따라 섰다.

내 차례가 돼 김 박사 앞에 섰다. 김 박사가 내게 무어라 말하더니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 박사가 환한 미소로 눈인사를 하며 “반갑습니다. 축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따라 웃으며 “반갑습니다”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 기분 좋게 잠들었던 기억이다.

김 박사는 그때 아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것이다. 스무 살 철부지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네”하고 답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고 25년 만에 브뤼셀에서 “내가 네 대답을 기억한다”고 일깨워 주셨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