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빈 의자

입력 2021-03-18 19:29 수정 2021-03-18 19:35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아침마다 우리는 그가 앉았던
식탁의 빈 의자와 마주 앉는다.
때로 손님이 와서 빈자리를 대신 채우기도 하지만
의자가 앉는다고 채워지는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만
더 확실해진다.
빈 의자를 치우지 않는 건
그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그건 어느 한 사람만이 앉아주기를 원하는
빈 의자의 권리를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내가 아니라
물건이 더 아프게 그를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도 멈추어버린 사랑을
쉽게 추월할 수 없는지 모른다. 김진영 아포리즘 ‘사랑의 기억’ 중

2018년 세상을 떠난 철학자 김진영의 아포리즘(경구나 격언처럼 체험과 깨달음을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묶은 책이지만 시처럼도 읽힌다. ‘빈 의자’의 주인은 김진영에 앞서 세상을 떠났던 그의 동생이다. 김진영은 ‘패러독스’라는 글에선 아우를 잃은 슬픔을 “가슴은 빙하.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한다. 머리는 사막.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한다”라고 썼다. 김진영의 아내에 따르면 책 제목 ‘사랑의 기억’은 그가 평소 좋아했던 문구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