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부터 ‘어쩌다 사장’까지… 여행 예능은 무한 진화 중

입력 2021-03-21 21:08
지금의 여행 예능은 어딘가로 떠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곳에 실제 거주하면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한다. 배우 조인성과 차태현의 시골 슈퍼 사장 적응기를 담는 ‘어쩌다 사장’의 포스터. tvN 제공

tvN ‘어쩌다 사장’의 소재는 서투름, 그리고 정겨움이다. 조인성과 차태현 두 톱배우가 한적한 시골 마을의 슈퍼 원천상회에 적응하며 쩔쩔매는 모습에서 동질감이 느껴진다. 온 마을의 도움으로 낯선 삶에 익숙해질 때, 넉넉한 인심이 보인다. 예능인데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여행을 떠난 것 같으면서 이사를 간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여행 예능은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제 거주하면서 현지인의 시선을 녹이고,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받는 등 다양한 변주를 거쳐 무한히 진화하고 있다.

어쩌다 사장은 역할극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시골 슈퍼 사장 도전기이면서 톱배우의 예능 적응기이기도 하다. 조인성은 절친 차태현과 함께 도시에서 벗어나 마을의 터줏대감격인 원천상회를 떠맡게 된다. 두 초보 사장의 일 처리는 엉망진창이다. 식료품 가격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카드 결제에 진땀을 흘린다. 사장은 어리바리한데, 손님들은 만능이다. 익숙하게 가게 안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원하는 물건을 쉽게 찾아낸다.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인데도 자꾸 보게 되는 매력은 대리 체험을 하는 것 같은 만족감에서 나온다. 시골의 여유로움이나 현지의 한적한 풍경은 치유의 역할도 한다.

어쩌다 사장은 ‘1박2일’(KBS)을 연출했던 PD 유호진의 작품이다. 유호진의 진화는 여행 예능의 진화와 같다. 1박2일은 출연진이 함께 여행을 떠나 하룻밤을 보내며 벌어지는 다이내믹한 사건들을 담는다. 비슷한 시기 인기를 누린 ‘패밀리가 떴다’(SBS)도 비슷했다. 이후 유호진은 2019년 tvN 이적 후 지난해 로컬의 관점에서 지방 주요 도시를 다니는 여행 예능 ‘서울 촌놈’을 선보였다. 로컬 그리고 여행에 애정이 있었던 그는 두 요소를 합쳐 시골 한 곳으로 떠나, 오래 머무르기를 택했다.

유호진 이전엔 PD 나영석이 있었다. 그도 1박2일을 시작으로 예능 여행에 발을 들였다. 2017년 3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작한 ‘윤식당’(tvN)은 나영석이 앞서 선보인 여행 예능 ‘꽃보다’ ‘삼시세끼’ 시리즈를 적절하게 섞은 새로운 콘셉트였다. 여행의 개념을 확장하면서 윤여정, 이서진 등 한국 배우들이 해외로 떠나 한식당을 개업해 외국인 손님을 맞기로 했다.

‘윤스테이’는 나영석 PD가 만든 ‘윤식당’ ‘꽃보다’ ‘삼시세끼’ 시리즈의 요소를 접목해 만들었다. tvN 제공

윤식당에서 진화한 게 ‘윤스테이’(tvN)다. 윤식당2 멤버(윤여정, 이서진, 박서준, 정유미)에다 최우식이 ‘인턴’이라는 부캐를 얻어 합류했다. 코로나19로 해외 촬영이 어려워지면서 대안을 찾다가 외국인의 한국 문화체험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장소만 한국 소재의 한옥으로 바꿨다.

이 프로그램들은 기존 여행 예능의 문법이었던 폭발적인 웃음 코드나 재기발랄한 게임에 의지하지 않는다. ‘불멍’(모닥불 등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것)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휴식을 갈구하는 현대인에게 느리면서도 고즈넉한 콘텐츠로 담담한 웃음을 선사한다.

취미 영역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도 언뜻 비슷해 보이는 여행 예능이 인기를 이어가는 이유로 꼽힌다. 배우가 예능에서, 그것도 식당과 슈퍼를 실제로 운영하는 콘셉트는 예능의 ‘부캐’(부캐릭터) 트렌드를 접목한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다양한 취미를 갈망하는 현대인에게 예능 속 부캐들은 판타지처럼 다가간다”며 “일이 중심이 아닌 여가와 균형을 맞추고 싶은 욕망을 자극해 대리 만족을 안긴다”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여행 예능의 변주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손현주의 간이역’(MBC)도 일종의 여행 예능이다. 명예 역무원이 된 스타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간이역을 찾아다니며 그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손현주는 “코로나19 탓에 가볼 수 없는 곳을 안방에서 여행하듯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긴 하지만 ‘비긴 어게인’도 여행 예능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K팝, 밴드, 인디,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아티스트가 해외에 머물며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의 다양한 장소를 방문해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