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인종 테러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미 정치권과 언론은 일제히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이 숨진 이번 사건을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로 규정했다. 용의자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 당국이 범행 동기로 ‘성 중독’을 거론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법무장관과 연방수사국(FBI) 국장으로부터 이번 총기 사고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면서 “(범행) 동기가 무엇이든지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이면서 인도 출신 어머니를 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메시지는 보다 분명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향한 증오범죄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안다”면서 “우리는 그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누구도 어떤 형태의 증오에 직면할 때 침묵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들은 경찰 당국이 범행 동기를 성 중독으로 몰아간다고 비판하면서 이번 사건을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한 혐오범죄로 불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하원의원은 이날 의회 발언을 통해 “나는 흑인이자 한국계로서 이런 식으로 (사건의 본질이) 지워지거나 무시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이번 공격은 지난 1년 동안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급증했던 폭력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앤디 김 의원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체계적인 인종차별주의(의 뿌리)는 깊다”면서 “희생자들 중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USA투데이 등 미 언론들은 아시아계 연방의원들 사이에서 인종적 증오범죄에 대응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미 국가정보국(DNI), FBI 등 정보 당국은 인종적 이유로 촉발된 극단주의자와 무장조직에 속한 과격주의자가 미국 내 테러 위협 중 가장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들의 공격이 올해 더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과 코로나19 팬데믹, 음모론 확산 등이 이들을 추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계 혐오범죄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임론도 부상하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전 정부 동안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로 부른 것이 아시아계 지역 사회에 대한 인식을 부정확·불공정하게 만들고 위협을 높였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캘리포니아주립대 증오와극단주의연구센터 분석을 인용해 미국 대도시 16곳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지난해 150%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채리사 체아 메릴랜드대 교수는 이 기사에서 “‘중국 인플루엔자’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실제 학대의 표적이 되게 하면서 ‘전염병의 인종화’가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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