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검장 참여 카드, 정면충돌·공정성 논란 비켜가

입력 2021-03-19 04:05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사건을 재심의하기 위한 대검 부장검사 회의가 열리게 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18일 모습. 회의에는 일선 고검장들도 참여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전날 대검 부장회의에서 기소 여부를 다시 판단하라고 수사지휘했다. 연합뉴스

정치권의 공방,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까지 얹혀진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처리를 위해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선택한 카드는 전국 고검장들의 참여였다. 모해위증교사의 존재 여부부터 진상조사 과정의 공정성까지 단계마다 많은 잡음이 끼었던 이번 사건은 결국 검찰이 동원 가능한 최고 권위의 협의체에서 검토되게 됐다. 이는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면서도 또 다른 공정성 논란을 불식할 수 있는 묘안으로도 평가받는다.

1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내부에서는 지난 17일 박 장관이 대검 부장회의에서의 심의를 지휘한 직후 고검장들이 참여한 협의체를 꾸리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검 부장회의의 설치·구성 규정을 담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에 “검찰총장은 사안에 따라 고검장, 지방 검사장을 참석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조 대행은 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 대검 예규를 설명했고, 고검장들이 대검 부장회의에 참석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때 “그렇게 하시라”고 받아들였다.

검찰 구성원들은 조 대행이 ‘고검장 참여’ 카드로 박 장관의 수사지휘를 부드럽게 받아들이면서도 검찰 안팎의 더한 갈등은 막았다고 보는 편이다. 조 대행은 이미 대검 연구관 회의를 거쳐 이번 사건의 무혐의 처분을 결정했었는데, 장관의 수사지휘를 있는 그대로 따른다면 조직 수장으로서 입지가 흔들릴 만한 상황이었다. 반대로 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버티거나 사의를 표명한다면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질 상황이었다.

박 장관이 지휘한 ‘대검 부장회의’를 액면 그대로 대검 내 검사장들로만 채웠다면 사건처리 여하에 따라 또 다른 뒷말이 나올 상황이기도 했다. 지난해 이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대립 속에서 대검 부장에 임명된 이들 일부는 ‘친정권’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징계 사태를 겪은 윤 전 총장이 올해 들어 대검 부장들의 교체를 희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검 부장들이 연구관들의 무혐의 결론을 뒤집는다면 이 역시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애초부터 많았다.

결국 19일 오전 10시 대검에서 연석회의 형식으로 모일 구성원은 조 대행을 포함해 총 14명이다. 이들 각자가 6000페이지에 달하는 전체 기록을 읽을 시간은 없다. 대신 오전에는 요약 보고서를 읽고, 오후에는 토론을 거치며 각자의 의견을 결정할 예정이다. 투표권을 몇 명이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회의를 주재하는 조 대행, 사건에 관여해온 한동수 감찰부장은 표결에서 빠지는 방안이 거론된다. 공소시효 완성 3일 전에 열리는 회의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린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해석이다. 검찰 관계자는 “밤샘 토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고검장들이 이번 사건처리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경험이 풍부한 고검장들의 의견까지 수렴하는 것은 계속되는 의혹 제기를 종식시킬 정당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대검 부장들이 연구관들의 무혐의 결론을 뒤집는다면 대검 자체의 존립에 의문이 제기됐을 상황”이라며 “고검장들이 참여함으로써 만일 기소 의견이 나오더라도 명분은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경원 허경구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