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역대급 풀리는데 실물유통 역대 최저… ‘돈맥경화’ 심각

입력 2021-03-19 00:06

지난 1월 시중에 풀린 돈이 3200조원을 넘어섰다. 한 달 새 약 42조원이나 늘어나 사상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문제는 홍수처럼 불어난 자금이 실물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거나 금고 안에 웅크리고 있는 탓에 돈이 생기 있게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18일 발표한 ‘1월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을 의미하는 광의통화(M2)는 3233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보다 41조8000억원(1.3%) 증가한 것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증가액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0.1% 늘어 2009년 10월(10.5%) 이후 11년 3개월 만에 최고 증가율을 보였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합친 넓은 의미의 통화량 지표로,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 자금을 말한다.

통화량 급증을 견인한 것은 기업이었다. 1월 역대 최대인 24조원이 늘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회사채 발행과 대출로 자금을 끌어모아 수익증권과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에 넣었다. 한은 관계자는 “1월에는 중소기업 대출이 많이 늘어났으며 자금조달 요건이 양호한 대기업은 회사채, 유상증자 등을 통해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경제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초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때 서둘러 ‘실탄’ 확보에 나선 것으로도 풀이된다.

시중 통화량은 기업 부문뿐 아니라 가계·비영리 단체(4조7000억원), 기타금융기관(4조5000억원) 등 모든 경제 주체에서 늘어났다. 금융상품별로는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이 전월 대비 15조3000억원 늘었고, MMF도 7조2000억원 증가했다.

그런데 넘치는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중에 돈이 얼마나 잘 순환되는지 보여주는 통화승수(M2/본원통화)는 지난 1월 14.45배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14.51배에서 더 내려갔다. 통화유통속도(명목 국내총생산/M2) 역시 지난해 4분기 0.62를 나타냈다. 모두 역대 최저 수준이다.

또 전체 지폐의 환수율도 21.5%에 그쳤다. 한은이 지폐 10장을 찍어내면 2장 정도만 환수되고 나머지는 어딘가에 잠겨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연간 지폐 환수율이 40%를 기록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2년 이후 가장 낮았었는데, 지난 1월에는 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특히 고액권인 5만원권 환수율은 고작 4.1%에 불과했다.

앞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달 23일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풍부한 유동성이 꼭 필요한 곳에 이르도록 물길을 내고 불필요한 곳으로 넘치지 않게 둑을 쌓는 치수가 필요하다”며 “비생산적 부문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적극 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