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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한 인터넷쇼핑몰에 올라 있는 광고 문구는 ‘신문 부수 부풀리기’의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인쇄 직후 바로 포장지 등으로 온라인에서 버젓이 판매될 만큼 신문 부수 부풀리기는 그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 공공연한 비밀이 지난 16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한국ABC협회에 대한 법인 사무검사 결과 등으로 확인되면서 이를 문제 해결의 첫걸음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체부 발표는 부수 부풀리기 문제의 현황과 그 원인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문체부의 신문지국 현장조사 결과는 부수 부풀리기에 대한 그간의 의혹이 의혹에 그치지 않았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조사 결과 2019년분 3개 신문사의 평균 유가율(발행부수 대비 유료부수 비율)은 62.99%였다. 이는 ABC협회의 3개 신문사에 대한 유가율(79.19~95.74%)과 격차가 큰 것이다. 성실률(신문사가 보고한 유료부수 대비 실제 유료부수 비율) 역시 문체부 조사에선 평균 55.37%였으나 ABC협회 자료는 82.92~98.09%로 기록돼 있었다.
ABC협회에 대한 문체부 사무검사 결과는 이 같은 불일치가 구조적인 문제였음을 드러낸다. 먼저 정확한 부수 측정을 위한 보고와 현장 실사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 협회는 신문부수 보고 요령으로 방문접수 또는 우편접수를 원칙으로 하고 팩스 및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한 보고가 불가하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특정 신문사의 경우 협회의 특정인에게 이메일 신고하고, 별도로 관리토록 했다. 현장 실사를 위한 표본지국 선정·교체도 특정 관리자가 단독으로 수행했고, 관련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신문사로부터 이의를 받아 보정하는 과정에서도 부실한 관리가 드러났다. 문체부는 현장에서 ‘유료부수 인정 불가로 확정된 자료’를 신문사가 동일한 자료를 추가 증빙 없이 보정 신청했음에도 유료부수로 인정해준 사례를 확인했다. 이로 인해 해당 지국의 성실률은 1.26% 포인트 올랐다. 부수 최종 확정을 위한 인증위원회(신문협회·광고주협회·ABC협회에서 3명씩 추천)도 유명무실했다. 문체부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재인증이나 인증보류 결정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는 등 형식적으로 운영됐다”고 지적했다. 보고부터 현장 실사, 사후 보정 등 ABC협회의 운영 전반에서 불투명한 업무 처리가 확인된 셈이다.
부수 부풀리기는 정부 광고 집행의 왜곡, 불필요한 자원 낭비 등을 초래하는 만큼 이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문체부 발표와 관련해 18일 29명의 국회의원이 ABC협회 등을 경찰에 고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이날 ‘유가부수 조작에 눈감은 ABC협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성명을 통해 “ABC협회가 인증했던 유가부수 산정에 따른 정부광고 집행 기준도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