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닥치면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코로나19로 교회 생활과 복음전파에 새로운 상황이 닥친 것이다. 피터 워드는 변화하지 않는 교회를 ‘고착된 교회’(solid church)로, 변화하는 교회는 ‘유연한 교회’(liquid church)로 규정했다.
유연한 교회는 구성원 개체를 활성화해 유기적 조직에 ‘참여’시킨다. 유연한 교회는 네트워크의 본질을 유지하며 흐르는 물처럼 움직인다.
과거엔 교회 규모에 따라 대형 중형 소형으로 구분했다. 이제는 규모가 아니라 영향력에 따라 구분하는 시대가 됐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과 교류가 교회의 물리적·지역적 한계를 뛰어넘는 파급력과 영향력을 보여준다. 캄선교회의 ‘라이트하우스 기도회’처럼 스튜디오에서 기도하는 모임에 수만 명이 동시에 접속해 참여하는 시대다.
어쩌면 지금이 500년 전의 종교개혁시대보다 더 강력한 변화를 겪는 시점이 될 것이다. 현장이 제약했던 예배 방법과 순서, 시간, 헌금 방법, 주의 만찬의 시행 방법, 성경공부, 전도 방법 등은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생각해 보자. 기독교 역사 속 성경 보급은 여러 차례 패러다임 변화를 겪었다.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에 기록한 말씀은 어느 순간부터 양가죽에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두루마리 형태로 지금의 책과 같은 편리한 형태를 갖게 됐다.
이후 대문자체(언셜체)로 기록되던 성경이 소문자와 대문자가 혼합된 형태(미나스쿨체)로 기록되면서 기록 속도가 빨라졌다. 이렇게 보급된 성경은 교권에서 성경으로 신앙의 축까지 이동시켰다. 종교개혁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제는 성경을 스마트폰으로 읽는다.
특정 문화권이나 상황에선 적합한 표현 방법과 전달 수단이 꼭 필요하다. 이를 상황화라고 정의한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의 성육신도 ‘상황화된 사건’이다. 초월적 ‘로고스’가 가시적 ‘육신’이 됐다는 것 자체가 극적인 상황화인 셈이다.(요 1:14)
우리는 이를 배워야 한다. 각 시대와 상황에 맞는 또 다른 상황화된 표현이나 개념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약성서 기자들이다.
초기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는 이원론 구조로 사물을 보고 정의하던 당시에 만연한 사상적 경향이었다. 이 경향을 따르던 집단이 영은 선하고 육(물질)은 악하다는 이원론 사상에 기초해 물질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은 악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며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런 가운데 신약성서 기자가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는 대담한 선언을 한 것이다. ‘빛과 어두움’ ‘영과 육’ 등과 같은 자칫 오해받을 수 있는 영지주의 개념이나 표현까지 사용해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말씀’으로 번역되는 ‘로고스’는 당시 세계에서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초월적 존재를 의인화한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선조들이 최고의 신을 의미하는 말로 쓰는 ‘하늘님’ ‘하느님’과 같은 표현이다.
이처럼 성경 기자들의 상황화는 지금 우리의 현실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 안에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선구자적 시도를 한 것이다. 신약성경 저자가 실천한 상황화를 코로나19 시대에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발현 환경은 ‘인간↔동물↔환경’이라는 유기적 네트워크의 붕괴다. 이는 이 시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유기적 관계의 구조적 회복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코로나19 이후 교회 환경을 결정지을 것이다.
네트워크의 중요성과 실체에 대해 비유적·알레고리적 접근을 해보자.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과 부활하신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목자의 사명을 주시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여기서 네트워크와 유연성을 각각 상징하는 ‘그물’(net) 및 ‘물’(liquid)과 유비된다.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의 공통점은 제자들이 물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깁고 씻는 등 충실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다. 그들의 그물은 찢어진 그물(눅 5:6)이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그물이기도 했다.(요 21:11)
물에서 그물을 준비하고 던지고 사용할 줄 아는 유연성의 물(liquid)과 그물의 원리(network)에 충실한 일꾼들(fishermen), 즉 네트워크의 원리를 경험한 자를 예수님께서는 사용하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삶은 인터넷 환경을 포함해 총체적으로 연결된 구조(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사회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중요 수단이며 투명성과 변화의 기반이 된다.
복음과 신약성경의 틀이 상황화를 통해 모든 시대의 희망이 됐다. 이처럼 교회의 발전 동력은 유연하고 역동적인 변화로 사회 구조를 활용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코로나19는 새로운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며 축복의 기회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를 말한다]
▶①
▶②
▶④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