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가 정치인가… 유럽 AZ 백신 접종 중단 논란

입력 2021-03-18 00:05
프랑스 남서부 생장드뤼즈 지역의 한 주민이 16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 접종센터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 접종센터의 유리문에는 ‘오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접종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AP연합뉴스

유럽 국가들의 아스트라제네카(AZ) 코로나19 백신 접종 중단 사태를 두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정이 아닌 정치적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영국, 백신 공급 문제로 갈등 상황에 놓인 AZ에 맞서 하나의 ‘전선’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독일이 AZ 백신 접종 중단 계획을 발표하자 유럽의 다른 정부들도 ‘통일된 전선’을 위해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면서 유럽의 AZ 백신 접종 중단은 정치적 이유로 결정됐을 수 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AZ 백신을 홍보하던 로베르토 스페란자 이탈리아 보건부 장관은 “안전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독일 측의 연락을 받았다. 백신 공급이 지연되는 와중에도 이탈리아 정부는 국민에게 접종을 장려하는 상황이었고, 불과 며칠 전에도 마리오 드라기 총리는 AZ 백신에 대해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국민을 안심시켰다.

다른 국가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이 접종을 중단했을 당시에도 “현재 시점에서는 프랑스든 독일이든 유럽 어느 국가에서든 이 백신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15일 독일이 접종 중단을 결정한 이후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페인, 프랑스 등도 접종 중단에 합류했다.

NYT는 “AZ 백신이 어떤 해를 끼치는지에 대해 명백한 증거가 부족한데도 유럽 국가들은 이미 불안정한 백신 접종 상황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까지 독일의 결정에 동참했다”면서 백신 자체의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공급 문제를 둘러싼 AZ와 EU의 갈등이 접종 중단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의약품청(AIFA) 조르지오 팔루 대표는 “독일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에는 ‘감정적인 상황’이 있다”면서 “전염병학적 수준에서 (AZ 백신과 혈전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NYT에 말했다.

마이클 헤드 영국 사우샘프턴대 글로벌 보건 책임연구원도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 백신 접종을 중단하는 것은 매우 극단적인 결정”이라면서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이 백신 개발과 접종에서 앞지르고 있는 데 대해 유럽 국가들이 속 쓰려 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백신 접종을 최소 1회 이상 한 인구는 영국의 경우 40%에 달하지만 독일은 8%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변이 바이러스 확산 공포가 퍼지는 상황에서 유럽의 이 같은 움직임이 “엄청난 오산”이라면서 “오는 9월까지 인구의 70%에 백신을 접종한다”는 기존의 목표를 더욱 달성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AZ 백신을 접종했을 때의 이익이 위험성보다 크며 혈전을 발생시킨다는 증거가 없다고 강조해온 유럽의약품청(EMA)은 18일 특별회의를 열고 최종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