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 선포돼야 할 곳은… 성소 아니라 정치·사회적 문제 일어나는 ‘저잣거리’

입력 2021-03-19 03:01
평신도 신학자이자 변호사인 윌리엄 스트링펠로우는 신앙과 삶이 일치된 삶을 살았다. 사진은 저자가 거주하며 흑인과 라틴계 이웃에게 법률상담을 했던 미국 뉴욕 빈민가인 이스트할렘 전경. 게티이미지

뮤지컬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뉴욕 빈민가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린다. 사이가 좋지 않은 두 공동체에 몸담은 두 젊은이가 비극적 사랑을 한다는 줄거리가 같다. 원작이 1595년쯤 이탈리아 베로나의 명문가를 다뤘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0년대 미국 뉴욕 뒷골목 폭력조직을 다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더 있다. 주인공인 젊은이의 죽음으로 원수인 두 공동체가 화해한다는 것이다. 비극에서 희망으로 발전한 이들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상에 깃들어 있다”란 신학적 교훈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 미국에서 성공회 평신도 신학자이자 변호사, 사회운동가로 활동한 윌리엄 스트링펠로우(1928~1985)다.

그는 1962년 펴낸 이 책에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줄거리를 언급하며 “한 사람이 죽고 다수가 화해를 이룬다. 어딘가 낯익은 이야기 아닌가”라고 되묻는다. 예수의 희생으로 인류가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십자가 사건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복음을 어떻게 외면하는가’가 부제인 이 책에서 저자가 영화평을 길게 언급한 건 “그리스도인은 삶의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전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감지할 수 없다면 그는 더 큰 현실, 즉 인류의 역사나 국가와 민족의 역사, 다른 사람의 삶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 역시 보거나 감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스도인이 일상의 평범한 삶에 하나님 말씀이 임했음을 세상에 증언하는 존재라면, 교회는 이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공동체다. 저자는 미국교회가 이런 본령에서 철저히 멀어졌으며, 복음 대신 종교행위에만 함몰됐다고 비판한다. “미국 종교의 핵심 관념은 ‘종교는 오직 종교와 관련이 있을 뿐, 삶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존 F 케네디를 배출한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런 관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대선 후보 모두는 ‘역사적으로 교화와 국가의 분리는 원칙적으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것을 뜻한다’고 발언했다. 저자는 이런 관점이 복음을 모욕하고 그리스도의 활동을 거스른다고 봤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 있고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종교와 실제 삶도 분리되고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된다.… 사회에 대해 침묵하는 종교는 사실상 그 사회의 현 상태를 뒷받침하는 도구다.… 삶과 무관한 종교에는 위엄이 없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돼야 할 곳은 성소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문제가 일어나는 저잣거리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교회를 향한 저자의 날 선 비판이 가능했던 건 그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저자는 학부 시절 학생그리스도교운동에 투신해 평신도 신학, 그리스도인의 소명 등에 관한 활동에 참여했다. 영국 런던정경대를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된 뒤로는 뉴욕의 빈민가인 이스트엔드에 살며 흑인과 라틴계를 위한 법률상담을 했다. 이후의 행보도 주로 약자를 위한 것이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비폭력 저항 운동 참가자의 법률 고문을 맡았고 74년 여성 최초로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은 이들의 법률 지원에도 나섰다.

신앙과 삶이 일치된 그의 삶은 저명한 신학자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62년 저자와 대화를 나누고 감명을 받은 신학자 칼 바르트는 “스트링펠로우와 그의 신학에 주목하라”고 언급했다.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는 저자를 “20세기 가장 창조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성공회 신학자”로, 미국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칼 바르트의 글을 현실에서 구현한 인물”로 평했다.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로 신앙의 색채가 나뉜 한국교회 상황에서 “신앙은 원칙적으로 지극히 사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지극히 공적인 문제”라고 외치는 저자의 신념이 인상 깊다. 60년대 미국교회의 현실을 신랄히 비판한 책이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