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원순 피해자의 첫 회견, 여당은 책임 있는 조치 취해야

입력 2021-03-18 04:01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17일 언론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심경을 밝혔다.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이 피소된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된 지 251일 만이다. 그동안은 편지 대독과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을 밝혀 왔다. 얼굴과 목소리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지만 이 역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번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이유가 많이 묻혔다”며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오히려 날 상처 줬던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됐을 때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어 후회가 덜한 쪽을 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민주당의 사과에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사건 초기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로 피해 사실을 축소·왜곡하려 했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치러진다. 그러나‘재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할 경우 해당 선거에 공천을 하지 않는다’는 당헌 규정을 개정해 결국 후보를 낸 것 역시 온당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선거 캠프에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로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활동 중인 것은 또다른 가해 행위다. 피해자는 사상 초유의 2차 가해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그분의 위력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고 호소하겠는가.

민주당은 피해자의 호소에 진정으로 귀 기울여야 한다. 피소 사실 유출로 논란이 된 남인순 의원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다. 피해자의 말대로 이 선거가 왜 시작됐는가를 따져보면 남 의원이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피해자가 지금 원하는 것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고 말했다. 용서의 전제는 그가 겪은 사실을 사실로 인정받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피해 사실이 인정됐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2차 가해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당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사실대로 인정하고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야당도 이 사건을 인권 관점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활용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번 회견이 피해자에게 의미 있는 치유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