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승부는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되곤 한다. 이창호 9단의 2005년 ‘상하이 대첩’이 그랬다. 한·중·일 3국의 바둑 국가 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은 각국 대표 5명이 돌아가면서 승부를 겨루는데, 이기면 계속 두고 지면 바로 다음 선수로 교체되는 데스매치 형식으로 진행된다. 당시 한국은 이창호 9단만 남았고 중국은 3명, 일본은 2명이 남아 있었는데, 이 9단이 홀로 이들을 모두 꺾고 대역전극을 일궈내며 한국에 우승컵을 안겼다. 이 9단의 기적의 5연승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천재 기사(棋士) 최택 역할을 맡은 박보검의 에피소드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드라마 같은 승부가 16년 만에 신진서 9단에 의해 재현됐다. 지난 2월 25일 막을 내린 같은 대회에서 신 9단은 중국 기사 2명, 일본 기사 2명을 내리 꺾고, 마지막으로 이세돌 이후 세계 일인자로 군림해온 중국팀 주장 커제 9단을 쓰러뜨렸다. 농심배 22년 역사에서 두 번째 ‘끝내기 5연승’이 이뤄진 순간으로, 한국은 중국에 뺏겼던 농심배를 3년 만에 탈환했다.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난 신 9단은 “첫판을 둘 때는 부담감이 컸는데 연승을 하면서 조금씩 긴장이 풀렸고, 오히려 마지막 판이 편했다”고 했다. 2000년 3월 17일생으로, 만 21세가 된 청년답지 않은 차분하고 담담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신 9단과 박정환 9단을 제외하면 세계 랭킹 10위가 전부 중국 기사들이더군요. 이전 인터뷰에서 중국 기사들은 다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했던데, 농심배는 물론 결승을 앞둔 응씨배와 춘란배도 중국 기사들을 꺾고 올라갔어요. 이제 부담감은 떨쳐낸 건가요?
“지금도 부담감은 큰데,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이세돌 사범님이 예전에 8강에 혼자 올라가서 ‘어차피 우승은 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고 우승한 적이 있어요. 그때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전엔 저만 남거나 한국 기사가 몇 명 없으면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지금은 제 승부에 집중하자고 생각해요. 한국 기사가 우승하면 위안이 되지만 제가 떨어진 건 변함이 없기 때문에요(웃음). 그래서 응씨배 8강, 춘란배 4강에도 저만 남았었지만 그런 부담은 적었던 것 같아요.”
한국 랭킹 1위이자 세계 랭킹 1위인 신진서 9단은 안팎으로 독주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해 LG배에서 우승하면서 10대에 세계 메이저 대회를 제패한 열 번째 기사가 됐다. 무엇보다 역대 전적에서 5승 10패로 밀려 약점으로 꼽히던 커제에게 최근 두 번의 대국에서 연승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8~2020년 3년 연속 다승·승률·연승 3관왕을 질주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76승 10패, 연간 승률 88.37%로 이창호 9단이 가지고 있던 최고 승률 기록을 32년 만에 깼고, 상금 10억3800만원을 벌어들여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에 이어 네 번째로 한해 상금 10억원을 돌파한 기사가 됐다.
-2018년 박정환 9단을 제치고 한국 랭킹 1위에 오르면서 ‘신진서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평이 많았지만 지난해 LG배에서 우승한 뒤에도 “아직 신진서의 시대는 아니다”라고 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저는 세계 메이저 1회 우승인데 박정환 사범님은 4회 우승을 하셨고, 커제가 8회 우승이기 때문에 그 생각은 같아요. 농심배 우승으로 제 입지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완벽하진 않고, 또 올라오는 기사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더 나아가려면 뭔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세계 1위라는 자부심보다 여전히 도전자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은데요?
“아직 그런 것 같아요. 이창호 사범님이 결승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만나면 바둑 팬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이 100% 우승이고, 바둑을 어떻게 둘지나 보자’, 그런 분위기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중국과 결승에서 만나면 ‘누가 될지 모르겠다’ 하면서 보시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이창호 사범님은 중국 기사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거든요. 저도 우승을 쌓아가면서 중국 선수들이 저를 두려워할 만한 걸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신진서 9단은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바둑계 일인자 계보에서도 이례적인 존재다. 2000년대생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특별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인터넷 대국을 두며 실력을 쌓아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바둑을 시작하게 된 건 바둑학원을 했던 부모님의 영향이었다. 첫 스승은 어머니. 다섯 살 때 처음 바둑돌을 잡은 후 1년 정도 만에 바둑학원의 형들을 제쳤고, 여섯 살 때부터 인터넷 대국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국내 어린이 바둑대회를 휩쓸었고, 6학년 때 입단이 가까워지자 가족은 그의 뒷바라지를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했다. 그해 만 12세4개월의 나이로 영재바둑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가 됐다.
-온라인에 신 9단이 어릴 때 쓴 하루 일과표가 올라와 있어요. 21개로 나눠놓은 일과 중 15개가 바둑이었어요. 지금까지 2만 판 넘게 인터넷 대국을 했다고 들었는데 ‘지면 이길 때까지 둔다’ ‘지면 1시에 자고 이기면 12시에 잔다’고 썼더라고요.
“열네댓 살 때 썼던 거로 기억하는데 바둑 말고 특별한 취미가 없었어요. 지금도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는 정도고요. 학교도 잘 안 다녔으니까 자연스럽게 바둑만 하게 된 것 같아요. 입단 초기에는 하루 저녁에 10연패를 해서 잠을 못 잔 적도 있어요. 지금은 그렇게 많이 두지 않아요. 그래도 이길 때까지 두는 건 비슷하네요.”
-아주 이른 나이에 진로가 정해졌잖아요. 중학교 2학년 때 학업을 접었는데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나요?
“한 번도 없었어요. 바둑이 아니었으면 아마 공부를 했을 텐데, 어릴 때부터 바둑은 돌을 하나씩 잡고 이기는 재미가 있었지만 학교 공부는 재미가 없었어요. 공부에는 재능이 없는 쪽 아닐까 해요(웃음).”
신진서 9단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별명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이다. 결승 시합에서 그가 뒀던 감각적인 한 수가 인공지능과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5시간 이상 AI로 훈련한다는 그는 자신의 별명에 대해 “별명에 걸맞은 실력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서 그 별명이 내게 맞나 싶기는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게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했던 게 5년 전 이맘때네요. 지금 인공지능이 인간과 대결한다면 신진서 9단을 상대로 지목할 텐데, 어떨 것 같으세요?
“알파고가 첫 대국 이후 2016년 말에 한·중·일 기사들을 상대로 60연승을 했어요. 그때 저도 무참하게 깨졌죠.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오류나 버그도 많았는데 지금 최상위 인공지능은 아예 실수가 없어요. 인공지능과는 승패가 아니라 몇 수를 버티느냐의 문제가 됐어요. 차이를 좁힐 수는 있겠지만 의미가 없는 대국일 거예요.”
-‘인간계에서 최고의 기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인가요?
“체스나 장기도 이미 AI가 최강이 된 거로 알고 있어요. 사람이 최강이 아니라는 아쉬움은 있죠. 그런데 인공지능끼리 시합하면 재미가 크지 않아요. 계속 50대 50 확률로 가다가 마지막에 결국 반집 차이로, 축구로 치면 0대 0으로 쭉 가다가 3대 2 승부차기로 끝나는 바둑이 대다수거든요. 팬분들이 보시기에는 인간 최고수끼리의 대국이 가장 긴장감 있고 승부의 혼도 있고 이야깃거리도 많아서 아직까지는 메리트가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바둑에 경외심이 생겼다’고 했던데요.
“제가 2016년쯤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대회에도 많이 올라갔는데 그다음부터 바둑이 잘 안 되기 시작했어요. 자만심이 생겨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슬럼프 비슷한 걸 겪기 시작해서 18년까지 크게 진보한 게 없을 정도였어요.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배웠고 계속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서 19년, 20년에 성적을 내게 됐어요. 최근 들어서는 바둑에 대한 마음가짐을 많이 생각하는데, 바둑 한두 판 이긴다고 자만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영향력 있는 기사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했던 걸 봤어요. 바둑을 더 많이 알리고 싶고, 바둑이 더 대중화됐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는 것 같은데요?
“바둑 인기가 예전보다 식었지만, 올해에만 한국 바둑에 두 번의 경사가 있었거든요(농심배 우승 외에도 신민준 9단이 LG배에서 우승했다). 한국이 중국에 밀리고 있다가 전세를 역전하고, 또 드라마 같은 승부를 많이 만들다 보면 지금보다 좀 더 인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어요.”
신진서 9단은 7개의 세계 메이저 대회 중 이미 응씨배와 춘란배 결승에 진출해 있다. 응씨배는 아직 일정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춘란배 결승은 오는 6월 14일과 16일, 17일로 정해졌다. “올해 세계 대회에서 단 한 판도 지고 싶지 않다”고 공언했던 신진서 9단이다. 이 두 개의 우승컵을 안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신진서의 시대가 맞느냐’는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6월, 첫 번째 낭보를 기대한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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