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지키던 김여정(사진)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미국 국무·국방장관의 동시 방한을 하루 앞두고 남측과 미국을 향해 말폭탄을 던졌다. 그는 16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맹비난하며 “남북 관계에 3년 전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대남 및 대미 관계를 총괄해온 김 부부장은 이날 문재인정부 대북정책 최대 성과인 9·19 남북군사합의도 ‘시원스럽게’ 파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대남 대화·협력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와 금강산국제관광국을 없애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 와중에 특히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을 코앞에 두고 양측에 경고하면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문을 노동신문에 게재하며 지난 8일부터 연합훈련을 진행 중인 우리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특히 우리 정부를 겨냥해 ‘미친개’ ‘바보’라 부르며 “병적으로 체질화된 남조선 당국의 동족대결의식과 적대행위가 이제는 치료 불능 상태에 도달했으며 이런 상대와 마주 앉아 왈가왈부할 게 없다. 남조선 당국은 스스로 자신들도 바라지 않는 붉은선(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얼빠진 선택을 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우리 정부가 ‘따뜻한 3월’이 아닌 ‘전쟁의 3월’ ‘위기의 3월’을 선택했다며 조평통·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차하면 9·19 합의까지 파기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추진 의사를 밝힌 문재인정부를 향해 ‘남북 관계를 2018년 이전으로 확실히 되돌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특히 김 부부장은 조평통·금강산국제관광국 폐지안의 경우 이미 오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고를 끝낸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부장은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게 소원이라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짧게 경고했다. 바이든 행정부 관련 북한 당국 차원의 메시지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 국무·국방장관 방한 직전 김 부부장 담화문이 나온 데 주목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를 움직여 미국의 대북정책 수립에 영향을 주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한·미 2+2(외교·국방장관) 회담 결과 등을 토대로 새로운 대북정책이 나오는 만큼 남측 팔을 비틀어서라도 이에 영향을 주겠다는 것이다.
블링컨·오스틴 장관은 17일 오후 한국에 도착해 당일 각각 카운터파트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한다. 18일에는 양국 장관이 함께하는 2+2 회담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할 예정이다. 양국은 이 자리에서 대북정책을 심도있게 논의할 방침이다.
일본을 방문 중인 블링컨 장관은 이날 미·일 2+2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북한 전략은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포함해 현재 재검토 중”이라며 “동맹국과 파트너와 함께 이 작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문에 대해선 “별로 익숙하지 않은 코멘트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코멘트”라고 평가했다.
손재호 김영선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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