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AZ) 코로나19 백신 접종자 일부에게서 보고된 혈전증 사례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국내 접종을 멈출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혈전 자체가 일반인에서도 발견돼 드물지 않고, 현재로선 접종과의 인과성도 매우 낮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아직 같은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양기 순천향대서울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백인종으로 한정하면 혈전증은 자연 상태에서 1000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식습관 등의 차이로 그보다 빈도가 낮지만, 동양인에게서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는 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3000~4000명당 1명꼴로 관찰되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AZ 백신과 혈전증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배경을 고려하며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000명당 1명이란 발생률과 직접 비교할 순 없지만 특별히 백신 접종자들에게 혈전이 자주 발생했다고 말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낸 입장문을 통해 유럽연합(EU)과 영국에서 1700만명 이상의 접종이 이뤄졌으며 15건의 심부정맥혈전증과 22건의 폐색전증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의 접종 후 이상반응 집계상으로도 AZ 백신과 혈전증의 관련성을 높게 추정할 근거는 없다. 1차 접종 기준으로 지난달 28일까지 970만명가량 AZ 백신을 맞았는데, 폐색전증과 심부정맥혈전증 의심 신고는 각각 13건과 14건이었다. 1070만명에 달하는 화이자 백신 접종군에서도 이 수치가 각각 15건과 8건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아예 유사한 이상반응이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지난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혈전 생성과 관련한 부작용 신고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같은 날 0시 기준 국내 AZ 백신 접종자는 52만6414명이었다.
인플루엔자 사백신의 경우, 혈전과의 관련성이 낮다는 과거 연구 사례도 확인됐다. 미국 마시필드클리닉연구소는 2007~2012년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자들을 살펴본 결과 백신 접종과 혈전증 발병 사이에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2017년 밝혔다. 접종은 주로 10월에 몰렸지만, 혈전증은 대상 기간(9~12월) 내내 고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접종을 통해 면역을 획득하는 기전은 코로나19 백신이든 인플루엔자 백신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며 “(백신과 혈전의 관련성이 적다는) 근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국내 접종을 중단할 필요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백신과 혈전증이 관련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며 만에 하나 관련됐더라도 제조 과정의 문제일 가능성이 커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 생산 물량을 접종하는 한국이 유럽의 조치를 당장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에선 60만명 가까이 접종을 마쳤지만 아직 문제가 없었다”며 “유럽의약품청(EMA) 조사 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현재로선 접종 중단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박영준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이상반응조사지원팀장은 “3억명 이상에서 접종이 이뤄졌고 아직 혈전과의 관련성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며 “EMA 회의 결과 등을 바탕으로 후속 조치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AZ 백신 접종을 멈춘 유럽 국가는 계속 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15일(현지시간) 접종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불가리아 등이 접종을 중단했다. 사실상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AZ 백신 전체 또는 일부 물량의 접종은 중지된 상태다.
관련성을 아직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유럽 각국이 접종을 중단한 배경은 ‘AZ 백신 의존도의 차이’로 분석됐다. 유럽 국가들은 접종을 중단해도 화이자, 모더나 등을 쓸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유럽 전역에선 이미 AZ 백신의 신뢰도가 떨어져 있었다”며 “이번 기회에 유럽의약품청(EMA)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문제가 없다며 재차 접종 권고를 내렸다. WHO 대변인은 이날 “백신과 혈전 현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접종을 이어나가 바이러스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인 EMA도 이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혈전 유발 징후가 없다”고 확인했다. EMA는 “현재 전문가 집단에 관련 질의를 했으며, 이들이 18일까지 이 문제에 관해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송경모 김지훈 기자 ssong@kmib.co.kr
송경모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