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가지표가 오르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으로 돌아간 모양새다. 경기 개선 기대감이 반영된 측면이 있지만, 그 뒤로 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게 문제다. 아직 국내 경제 회복세 지원에 통화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은행으로서는 인플레이션 우려 차단에 애쓰는 중이지만, 물가상승 압박이 점차 가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은은 지난달 수입물가지수(2015년=100 기준)가 105.53으로 한달 새 3.8% 올랐다고 16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이후 석 달째 오름세이며,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해 2월(106.39)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국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뛴 데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 영향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광산품(8.3%) 등 원재료가 7.4% 상승했으며, 석탄·석유제품(7.4%) 등 중간재도 3.4% 올랐다. 두바이유 가격은 2월 평균 배럴당 60.89달러로 전달보다 11.1% 상승했다.
지난 1월 생산자물가지수 역시 전월 대비 0.9% 오른 104.88을 기록했다. 2017년 1월(1.5%) 이후 4년만의 최대 상승률이다. 농림수산품이 한파와 조류독감 확산 여파로 7.9%나 뛰었으며, 농산물도 양파(29.5%), 파(53.0%), 호박(63.7%) 등을 중심으로 7.8% 올랐다.
수입·생산자물가의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자극한다.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7.00을 나타냈다. 지난해 2월 대비 1.1% 올라 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0월(0.1%)부터 4개월 간 0%대에 머무르다가 다시 1%대로 올라섰다.
한은도 기존 1.0%였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3%로 상향 조정했다. 향후 1년 후의 기대인플레이션도 2019년 8월 이후 처음으로 2%대를 회복한 상태다. 여기에 들썩이는 국내외 국고채 금리 역시 변수다.
주요 물가지표들의 동반 우상향은 한은의 고민을 깊게 한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풀어놓은 유동성을 거둬들일 시점이 다가온다는 신호지만, 민간소비를 비롯한 전체 경기 회복세는 아직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도 여전해 섣불리 물가를 잡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은이 최근 국회에 보고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도 이런 딜레마가 묻어난다. 한은은 “급격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물가상승 압력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는 데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예상보다 인플레이션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을 추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경기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금리를 올리면 더 경기가 나빠지니까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민 체감 물가 고통은 상당히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