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투기 단속 집중하다 하위직 뚫렸다

입력 2021-03-17 04:06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는 정부의 공직자 관리에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고위공직자 단속에 집중하는 사이 ‘밑’이 뚫렸기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 재산 등록·신고 확대에 나서기로 했지만, 그만큼 대상이 광범위해지면서 실효성 높이기가 난제가 될 전망이다.

재산 등록은 4급 이상 공무원과 국가 및 지자체 정무직 등이 대상이며, 재산 공개는 1급 이상 공무원 또는 고위공무원단 ‘가’등급 및 국가 및 지자체 정무직 등이 포함된다. 재산은 주식만 이해 충돌 업무 배제와 백지 신탁이 있다. 부동산은 내부 정보 보안 각서는 쓰지만 관련 거래 등에 대한 신고 제도는 없다.

이에 현 정권은 공직자 부동산 투기 엄벌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고위직 승진 때 다주택 여부 등을 까다롭게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LH사태는 사각지대에서 뚫렸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공직자 재산 현황이 부각되는 자리가 아니면 자산 투자에 조금 더 자유롭지 않겠냐”며 “이런 곳에서 오히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태가 터진 뒤 재산 등록 대상을 4급 이상에서 4급 이하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다만 4급 이하 어디까지를 대상에 포함시킬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또 부동산 거래 신고 의무화, 부동산 이해 충돌 적용 등에도 나섰다. 그렇다고 모든 공직자 재산 견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내부 정보가 활용된 자산 투자는 수사 기관에서도 입증이 쉽지 않다. 정보의 비밀 여부, 정부 취득 시점과 이득 실현의 인과 관계 등의 증명이 까다롭다. 각 기관장이 일일이 업무 배제와 매각 등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제로 LH사장이 직원 토지 거래를 정기 조사하는 법안에 대해 국회 심사 보고서는 “공사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거래 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할 역량 및 권한이 있는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부동산도 업무 배제, 매각 등이 도입된다면 재산권 침해 논란이 나올 수 있다. 주식은 부가적인 자산 투자로 안 할 수 있으나 부동산은 주거 권리와 연결된다.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 지 애매하다. 공직자 공정성을 위한 독립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는 16일 “내부 정보 이용은 처벌이 쉽지 않아 관련 업무자의 주거용 주택 외 취득 자체를 제한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며 “재산권 침해는 법리보다 가치관적 문제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신재희 이종선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