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가족도 기획부동산에 속았다는데… 나도 당했나요”

입력 2021-03-17 04:02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달 초 전 직장 동료의 소개로 서울 강남에 있는 부동산컨설팅 업체를 찾았다. 업체는 그에게 경기도 평택에 있는 호텔 부지를 5평(16.5㎡) 단위로 쪼개 매입할 것을 권했다. 지인 역시 100평을 샀다는 소식에 A씨는 3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A씨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업체 관계자가 ‘2년 안에 호텔이 들어서고 고층으로 지을 계획이라 용적률이 올라가는 만큼 수익도 커진다’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컨설팅 관계자는 또 ‘현장에 아직 아무것도 없지만 머지않아 지하철과 아파트도 들어올 테니 눈만 감았다 뜨면 값이 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A씨는 큰 꿈에 부풀어 덜컥 계약했지만 한 달여 만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사전 투기 의혹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그제야 이번 투자가 기획부동산에 의한 사기 수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A씨는 “국회의원 가족도 기획부동산 꼬임에 넘어가 1년 넘게 땅을 처분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컨설팅 업체에 전화했더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실제 국회의원 가족 가운데 기획부동산에 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속속 알려지고 있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배우자는 3기 신도시 광명·시흥지구에서 5㎞ 정도 떨어진 곳에 임야 179㎡와 142㎡를 2016년과 2018년 각각 매입했다. 투기 논란이 불거지자 김 의원 측은 최근 서둘러 땅을 매각했지만 땅이 수십명 명의로 잘게 쪼개져 있어 처분에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 의원 측은 “기획부동산이 평당 17만원짜리 토지를 80만~130만원에 매도하고 연락을 끊어 되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50대 전업주부 B씨는 한 기획부동산 업자의 추천을 받고 5년 전 경기도 시흥 소재 임야 100평을 평당 45만원에 샀다. 구입대금은 대부분 신용대출과 보험대출로 끌어모은 돈이었고, 친척에게 빌린 돈도 상당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땅값은 수년째 변동이 없고 대출 이자만 계속 발생했다. 급기야 지난해 7월에는 부동산 업자와 연락마저 끊겼다.

B씨는 “당시 부동산 업자가 3~4년 안으로 그린벨트가 풀리면 대학 캠퍼스와 체육공원, 지하철이 들어서고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B씨는 최근에야 본인 땅 정보를 상세하게 확인했고, 개발 예정 구역과는 수십㎞ 떨어진 공익용 산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씨와 지분을 공유하는 ‘알 수 없는 사람’만 20명에 달했다.

문제는 기획부동산 피해자에 대한 마땅한 구제책이 없다는 것이다. 민사소송을 하려 해도 기획부동산 관계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다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도 희박하다. 기획부동산 사기가 통상 다단계 형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막상 피의자를 잡아도 빈털터리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승소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토지 거래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중히 고민하고 검토할 것을 강조한다. 김예림 부동산 전문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매입 전에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개발 계획을 확인하거나 등본을 떼보고 현장에 가보는 것은 기본”이라며 “부동산 업체가 최근에 설립된 곳이라면 사기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