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식게 먹으러 간다”는 말은 요즘도 흔히 쓴다. 식게는 기제(忌祭)의 제주어로 친척 집 기제에 간다는 말이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기제가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기제 음식을 모두 나눠 먹던 전통에서 유래한 말이지 싶다. 내가 사는 제주도 시골 마을의 지인이 기제가 있다고 해 식게 먹으러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제주도 사람들의 기제를 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헤아려 기꺼이 초대해주고, 마침 그 집과 사돈 관계에 있는 친구와 다른 친구 한 명 등 두 명이 더 동행했다.
기제의 상차림은 크지 않았지만 가짓수는 빠짐없이 갖췄다. 진설한 음식마다 가지런히 담아 올린 정성이 가득했다. 온갖 과일이 다듬어져 쌓였고 소라와 생선, 고기로 만든 적, 옥돔과 벵에돔 구이, 떡, 나물들이 차려졌다. 내가 사온 국화 한 다발이 옆에 자리 잡았다. 큰아버지 영정은 20대 초반의 젊은 모습이었다. 사고로 18세 때 결혼을 하지 못한 총각으로 숨졌다. 기제는 동생의 아들, 나의 지인인 조카가 양자로 입적해 모시고 있다.
큰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몇 년 지난 뒤 이웃 마을에 살던 15살 소녀가 폐렴으로 숨졌다. 온 동네 어른들은 그녀를 꽃같이 예뻤다고 기억하고 있다. 중매쟁이가 나서서 이들을 맺어줬고 앞서 죽은 총각과 소녀를 의식을 갖춰 혼인시켰다. 사후혼이다. 자식을 일찍 잃은 양가는 이 혼인이 큰 위안이 됐다. 조카가 양자로 입양된 것은 사후혼 뒤다. 사후혼 신랑과 신부 양가는 사후혼 이후 지금까지 사돈 관계를 깍듯이 지키고 있다. 사후혼 신부는 나와 동행한 친구 고모다.
1975년 제주대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 제주교대 여학생과 사랑했다. 남학생의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여학생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여학생 집에서 가난한 농부 집에 시집보낼 수 없다며 연애를 반대했다. 남학생이 이를 비관하고 자살하자 이튿날 여학생이 따라 자살했다. 여학생 집에서 합장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남학생 집에서 반대하다 결국 저승에서나 사랑을 이루도록 해주자며 쌍분을 만들어주고 사후혼을 시켰다. 제주도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당시 제주도를 울렸다.
사후혼은 처녀, 총각으로 숨진 자녀에 대한 딱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현실적으로는 자식 없이 숨진 자녀의 기제나 차례를 지내줄 양자를 얻는 데 있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은 부모가 자식의 죽은 날을 기억하고 애도한다. 그러나 부모가 죽은 뒤 먼저 간 자식을 대대로 기억해 줄 후손이 필요하다. 미혼자는 입양을 할 수 없다. 사후혼을 시켜야 입양할 수 있고 부모 형제의 대가 끝나도 양자가 대를 이어 추모하게 된다. 양자에게는 사혼자의 재산이 상속된다. 사혼자의 부모가 바라는 바다. 양자는 그래서 재산과 기제를 맡길 수 있는 형이나 동생의 아들, 즉 조카가 많다.
사후혼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에 기록이 많다. 육지라고 왜 기제와 차례가 중하지 않겠나. 육지는 그러나 빠르게 변하고 있어 찾기 어렵다. 제주도 전통사회는 급할 게 없어 그런지 그닥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듯하다.
박두호(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