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네 주민끼리 중고물품을 직거래하는 당근마켓에서 해외 직접구매사이트인 아마존까지 우리는 플랫폼과 플랫폼을 오가는 경제활동을 즐기고 있다. 이런 다양한 플랫폼 출현에 따른 디지털경제 전환은 가속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비대면 거래 활성화도 이런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 시장을 공정하게 유지시키고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 규제는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물론 여야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새로운 법안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갈등을 조정해야 할 당정청은 무기력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9일 “청와대 말도 통하지 않는 플랫폼 규제 사태만 놓고 말한다면 현 정부는 이미 레임덕에 빠져 있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플랫폼 경제의 명암
2010년 25조원이었던 온라인 쇼핑몰 거래액은 지난해 161조원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카탈로그 책자를 보고 우편으로 신청하던 전통적인 통신판매 행위는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 자리를 쿠팡 등 오픈마켓과 배달앱, 아마존 등 해외 직구사이트, 개인 간 거래인 당근마켓 등이 차지했다.
소비자와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중개자를 뜻하던 플랫폼 업체는 이제는 단순 중개업무를 뛰어넘어 대금 수령, 배송 등을 도맡아 하는 플랫폼 시장의 ‘주인공’이 됐다. 소비자들은 이런 플랫폼 업체를 통해 전날 밤 시킨 물건을 다음 날 새벽에 현관 문 앞에서 확인하고, 점심에는 배달앱을 통해 식사를 해결한다. 유명 인플루언서의 SNS를 보다가 인플루언서가 파는 물품을 충동구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 뒤에는 그림자가 커지고 있다. 공룡 플랫폼 업체 출현으로 입점업체들이 플랫폼 업체에 과도한 수수료를 내야 하는 ‘갑질’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불만과 피해도 늘고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상담건수는 2016년 약 14만건에서 지난해 20만건을 훌쩍 넘었다.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거대해진 플랫폼 시장을 건전하게 발전시키고 소비자 피해를 예방·해결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주무부처를 자처하는 공정위는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관련 법 제정 및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플랫폼법)을 새로 만들어 지난 1월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5일에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두 법은 플랫폼-입점업체 간 불공정행위를 차단하고(플랫폼법) 플랫폼업체-소비자 간 분쟁을 예방·해결(전상법)하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두 법 모두 중복규제와 효율성 등을 두고 논란에 빠졌다. 우선 플랫폼법은 공정위가 만든 법안이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으로 확정됐지만 방통위 의견을 담은 여당 전혜숙 의원이 ‘온라인플랫폼 이용자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두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여기에 서너 개의 관련 의원입법이 대거 발의돼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전상법 개정안 역시 입법예고 직후 과도한 규제라는 반발에 부딪혔다. 공정위는 당근마켓 등 개인 간 거래(C2C)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중개업체가 이용자 이름·주소·전화번호를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포함했다. 이를 두고 실명·주소·전화번호를 거래 당사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것은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이며, 분쟁 갈등을 고조시킨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공정위가 아마존 등 해외 직구사이트에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해외사업자에 피해배상 등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개정안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전상법 역시 여야 의원들이 조만간 의원입법 형태로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플랫폼법처럼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가는 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책조정능력 상실한 정부
플랫폼법의 경우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부처 간 갈등이 여당 내 상임위원회 갈등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누구도 이를 조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 2월 당정은 비공개 회의를 열고 관련 상임위를 정무위원회로 정리하고 공정위 제출 정부안을 단일안으로 심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내 여당 의원들이 반발하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유동수 정책위 수석부의장 주재로 두 차례 회의를 열어 조율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회의 과정에서 발언권 없이 말한 방통위 간부가 정무위 소속 의원에 의해 회의실에서 쫓겨나자 과방위 소속 의원이 이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이 많이 컸네”라고 말하며 망신을 주기도 했다.
청와대 역시 국무회의 논의과정부터 두 부처와 여당 내 갈등을 조정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경제부처 한 관계자는 “정부 내 정책조정 능력은 사라진 것 같다”면서 “두 법안 모두 상반기 통과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