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1일 국민일보 1면 기사의 제목은 ‘국민 76% 일해서 번 돈으로 부 축적 어렵다’였다.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상당수가 근로소득의 가치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응답자들은 반면 부동산과 주식 등 자본소득에는 너그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예상했지만 그래도 씁쓸했던 조사 결과는 부동산 불로소득에 관한 것이었다. ‘부동산 구매로 번 돈이 불로소득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1.5%가 ‘아니다’고 답했다.
여론조사로 발견한 건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욕망이 더 컸다. 20대의 70.5%가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을 닮고 싶다고 했다. 욕망의 근원에는 불안이 있었다. 취재팀이 만난 20대는 “월급을 모아서는 집이나 차를 사는 일이 불가능할 것 같아 미래가 깜깜하다”고 했다.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의 배경에도 이런 욕망과 불안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파트값이 수억원씩 올랐다는 동료와 지인의 말에 더 큰 욕심이 났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LH 직원들은 욕망을 실현하기 더 쉬운 위치에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갖고 있지 않은, 개발과 부동산에 관한 수십년의 경험과 정보를 갖고 있었다. 토지 보상의 세계는 복잡하고 변수도 많아 이러한 전문성이 토지 구매에 어떻게 발휘됐는지 아직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보상을 잘 아는 공기업 직원들이 개발이 유망한 지역에 땅을 산 것 자체가 잘못됐다. 이들의 행위는 엄연한 범죄로 규정돼야 한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방지 의무와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의무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주목하고 싶은 건 이번 일의 배경이 된 부동산에 대한 욕망과 불안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 많은 사람이 부동산 구매를 경제생활의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한편으로는 집값이 더 오를까 불안해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처럼 수익을 얻고 싶어서다. 이 욕망과 불안은 정부가 키운 것이다.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올랐고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다. 아파트를 사서 수억원을 벌었다는 주변 사람의 사례는 비난이 아닌 선망의 대상이 됐다. 20, 30대는 지금도 늦었다는 생각에 ‘패닉 바잉’에 나서고 있다. 유튜브에는 부동산 투자로 단기간에 수억원,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영상들이 수만, 수십만건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벼락거지’로 부르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부동산에 관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는 투기와 투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투기의 사전상 정의는 ‘시세 변동을 예상해 차익을 얻기 위해 하는 매매’다. 최근 집을 산 사람 대부분의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누구도 부동산 투자를 한다고 하지 투기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기업 직원이 하면 투기이고 일반인이 하면 투자인가. 그렇지 않다. 모두 투기다. LH 직원의 행태는 투기에 범죄가 더해진 것이다.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을 계기로 정부는 또다시 욕망을 억누르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공직자들의 토지 거래를 제한하는 대책과 함께 일반인에 대해서도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주택을 상대로 펼쳤던 거래 제한, 세금 인상 등이 토지에 적용될 수 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이런 정책으로 억누를 수 있을까. 이번에 나타났듯 이 욕망은 또 다른 빈틈을 찾아가지 않을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우리 사회에 너무나 큰 숙제를 안겼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