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럽을 좋아한다. 유럽은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유명한 명소에서는 소매치기와 같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게도 되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인들이 갖춘 매너에 늘 마음이 녹는다. 자동차에서 승하차할 때마다 누군가 달려와 문을 닫아주고 열어주는 것에 마음이 녹는다. 길가에 꽃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꽃을 선물해주는 시민에게 마음이 녹는다. 유럽인의 기본적인 정서인지 개인의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존중받는 상황에서 늘 로맨틱함을 느끼곤 한다.
현재 거주하는 부다페스트에서도 로맨틱한 상황을 자주 겪는다. 입국 후 자가격리하는 기간에 헝가리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가격리 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차 연락한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몇 가지 질문을 건네더니 잠시 창가로 나와줄 수 있느냐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길가에서 경찰이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를 따라서 나도 손을 흔들었고 우린 헤어졌다. 단순 자가격리 확인차 벌어진 상황임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괜히 마음이 설렜었다.
헝가리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두 배로 뛰었다. 심각함을 느낀 정부가 보름간 식료품점과 약국, 그 외 중요 시설을 제외하고 전부 영업을 중단시켰다. 조용한 거리가 슬프게만 느껴지던 중 여성의 날을 맞이해 정부에서 단 하루 전국의 모든 꽃집만은 영업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길가에 가득해진 꽃향기와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만끽하며 헝가리 정부의 로맨틱함에 박수를 보냈다.
이런 작은 상황들이 내가 유난스러워서 받는 감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배려와 소소한 매너에 마음이 흔들리는 걸 어쩌겠는가. 일과 사람에 치여 마음에 상처만 가득한 채로 부다페스트에 오게 됐는데 매일 웃고만 지낸다. 애인이 없어도 가슴이 설렌다. 내일이 기다려진다는 사실에 매일 볼을 꼬집게 된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