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주범 조주빈(26) 등 이른바 ‘n번방’ 사건의 상당수 가해자들이 검거된 지 1년이 됐지만 피해자들은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당이 제작했던 성착취물이 ‘n번방 자료’라는 이름 등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탓이다. 음성채팅 메신저인 디스코드가 대표적이다.
국민일보가 15일 확인한 디스코드의 한 채널 게시판 제목은 ‘n번방 모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였다. 게시판에 접속하자 “직접 n번방+박사방 모은 자료입니다. 희귀자료이기 때문에 추천드려요”라는 공지 문구가 떴다. 채널 운영자는 ‘2, 3, 4, 5, 6, 7, 8, 박사’라는 제목의 폴더가 캡처된 자료화면을 함께 게재했다. 자료 판매 가격은 5000원을 제시했다.
다른 채널에선 ‘초중딩’ ‘중고딩’ 등의 제목으로 미성년자 등장 불법 영상물을 판매했다. 운영자는 ‘초중딩 영상 팝니다. 가격 1만원’으로 공지하고 영상 이미지 40여개가 캡처된 화면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도촬(도둑촬영)’ ‘유출영상’ 등 불법 영상물이 거래되고 있었다.
이들은 구매자에게 구매기록과 후기 등을 남기게 해 자신들이 판매하는 성착취물이 ‘진짜’임을 강조했다. 조주빈 일당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특수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등 거래방식을 복잡하게 꾸민 것과 달리 이들은 오로지 문화상품권으로만 거래했다. 단순하지만 거래 익명성을 보장받기 위함이었다.
운영자들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게시판에 성착취물 일부를 공개하고 추가 자료는 입금 확인 후 공유하는 방식으로 수요자를 끌어모았다. 한 운영자는 “고퀄리티, 희귀 자료만 업로드한다”며 “VIP 회원은 보고 싶은 자료를 요청하면 올려드린다”고 홍보했다.
이처럼 n번방 영상 등 성착취물은 텔레그램을 벗어나 다른 플랫폼에서도 우후죽순으로 복제·배포되고 있었다. 성착취물 거래 용도로 만들어진 채널마다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명의 이용자들이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았다.
단속망을 피하기 위한 ‘대피소’도 운영됐다. 채널 삭제를 대비해 텔레그램 등에 별도 채널을 갖춰놓은 것이다. 채널 폭파와 재개설을 반복하며 9개월째 자료방을 운영 중이라는 한 운영자는 “3400명이 있던 샵이 터지고 기존 회원들로만 운영하려 했지만 문의가 많아 다시 조금만 받겠다”며 “디스코드는 (서버가) 자주 터지니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달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성착취물의 구매·유포자들을 강력 처벌하지 않는 이상 온라인에서 성착취물이 무한히 복제·배포되는 현실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착취물을 이용, 구매한 것이 적발됐을 시 특정 기간 동안 기록을 남기고 그 사실을 공개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사업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조건만남 등 사건이 벌어졌던 랜덤채팅의 경우 국가 차원의 모니터링이 지속되고 사업자들이 자체 규제 방안을 마련하면서 성착취 사건이 크게 줄었다”며 “디스코드 등 해외 사업자들에게도 자체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권고해 이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형사처벌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조주빈 검거 1년... 얼마나 달라졌나]
▶(상)-①
▶(상)-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