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과 한마디 없이 ‘부동산 적폐청산’ 외친 대통령

입력 2021-03-16 04:02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사건은 국민적 분노가 워낙 커서 모든 현안을 집어삼키고 있다. 정부·여당에서 민심을 달래려 온갖 방안을 내놔도 별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서 분노를 진정시켜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번 사태에 관한 입장을 밝혔지만 불붙은 민심을 진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적폐청산과 투명하고 공정한 부동산 거래 질서 확립을 남은 임기 동안 핵심적인 국정 과제로 삼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이) 촛불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했다.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척결하는 건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까지 ‘적폐청산’ ‘촛불 정신’ 구호를 가져온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 정권은 잘못이 없고 투기 세력이 적폐라는 식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 발언이 소모적 정쟁과 진영 간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이지만 우리 정치가 오랫동안 해결해오지 못한 문제”라며 이번 사태를 모두의 오래된 잘못으로 규정했다. 오래된 문제라도 지금 이렇게 크게 터졌으면 책임감을 느끼고 사과하는 게 정상 아닌가. 문 대통령은 “여러 분야에서 적폐청산을 이뤄왔으나 부동산 적폐의 청산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그저 부동산 시장의 안정에 몰두하고, 드러나는 현상에 대응해왔을 뿐”이라고 했다. 집권 기간 내내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었으면서 왜 부동산 적폐청산은 엄두도 내지 못했는지, 부동산 시장 안정에 몰두했으면서 왜 안정을 이뤄내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그 이유를 밝히면서 진솔하게 사과부터 하는 게 정권의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무주택자와 청년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2·4 주택공급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지난 12일 사의를 밝힌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즉각 경질하지 않은 것도 2·4 대책 추진 때문이다. 이 정책을 변 장관이 주도해왔으니 입법 관련 기초 작업까지 마무리하고 물러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변 장관은 이미 국민의 신뢰뿐 아니라 정책을 추진할 동력도 잃은 상태다. 변 장관의 사표를 빨리 수리하고 새 장관 임명으로 분위기를 일신해서 정책을 추진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