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별을 노래한다

입력 2021-03-16 03:02

사람들은 왜 공정 혹은 정의를 원하는 걸까. 맹자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인 수오지심(羞惡之心)에서 정의감이 시작된다고 한다. 수오지심은 부끄러워하며(羞) 미워하는(惡) 마음이다. 자신의 잘못은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미워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다. 맹자는 미워하는 마음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앞에 놓았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미워하는 것만으로는 정의를 세우지 못하며,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는 뜻이다. 맹자의 통찰력이 놀랍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공정과 정의를 바라지만, 우리 사회가 공정사회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이유는 부끄러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이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가해자를 찾아 보복하려 할 것이다. 그 대상을 발견하면 집중 공격해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기세등등하게 다음 먹잇감을 기다린다. 지난 1년만 돌아봐도 중국인, 신천지, 동성애자, 개신교인, 검찰과 법무부, 부동산정책 당국자, 학교폭력 가해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등이 차례로 분노의 제물이 됐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으로는 정의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세상이 더 삭막해질 뿐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인류 보편의 가치이며 그 기원은 바로 성경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서 맨 처음 느낀 감정은 자신의 벌거벗음을 아는 데서 오는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죄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죄짓는 것을 막아주는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다. 죄지은 자신을 부끄럽게 여김으로써, 죄로부터 멀어지고 의를 좇도록 했다.

예수 믿고 회개한 성도가 갖게 되는 기본적 정서 가운데 하나는 부끄러움이다. 죄를 깨달으면 하나님 앞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것 같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나의 죄를 알게 되면 더욱 얼굴을 들 수 없다. 나 때문에 손해를 입은 사람이 있으니 씻을 길 없는 그의 상처와 고통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죄를 지은 나는 용서 받아 평화를 누리는데, 하나님의 자비를 받지 못한 고통 받는 이들을 보면 더욱 죄송하다. 닳고 닳은 기성세대 목사인 나는 존경과 대우를 받는데, 순진한 젊은 목회자가 기댈 언덕 없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괴로울 정도로 미안하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한다는 시인 윤동주는 부끄러움의 시인이었다. 그는 구리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욕된 역사를 떠올리며 부끄러움을 느꼈다.(참회록)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한 자신의 이름을 흙으로 덮어버릴 정도로 슬퍼했다.(별 헤는 밤) 잎사귀를 스치는 작은 바람도 자신의 잘못인 양 괴로움에 잠을 못 이뤘다.(서시) 심지어 시가 쉽게 써지는 것도 부끄러워했다.(쉽게 씌어진 시) 또래가 징용으로, 위안부로 끌려가는데 부모님이 보내주는 학비를 받아 시를 쓰는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던 것이다.

윤동주는 또한 별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그는 별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임을 알았다. 밤과 같은 부끄러움 속에서만 가슴에 하나둘씩 별이 새겨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별 헤는 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그래서 별도 함께 잃어버린, 나와 내가 속한 조국의 교회를 안타까워하며…. 뻔뻔함이 선거 전략이요 속물주의가 미덕이 돼버린, 그래서 의(義)가 아닌 이(利)만을 좇는 대한민국을 한탄하며….

장동민(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