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 품은 마리아처럼… 교회가 ‘태아 지킴이’ 돼야

입력 2021-03-16 03:07
오창화 전국입양가족연대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6일 서울 국회 서정숙 국민의힘 국회의원실 앞에서 서 의원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 현판을 부착하고 있다. 행동하는프로라이프는 낙태를 줄이기 위한 낙태법 개정안 발의에 동참한 의원을 격려하기 위해 ‘가장 약한 자 태아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판을 부착해준다.

코로나19로 더없이 힘들었던 겨울은 지나가고 이제 완연한 봄이다. 나뭇가지마다 싹이 움트고 매화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꽃들이 저마다의 생명력을 뽐낸다. 얼어붙었던 땅이 생명을 잉태하며 죽은 줄 알았던 고목에도 다시 생기가 돈다.

봄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작은 인간 배아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신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생명을 부정하는 여전히 지독한 겨울이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정으로 국회는 지난해 연말까지 낙태법을 개정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는 이를 제대로 논의하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국회는 1년 8개월의 짧지 않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정쟁에 모든 시간을 허비했다.

급기야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자체가 무효가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이로 인해 매년 잉태되는 수백만의 태아들은 낙태의 위협 앞에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무차별 폭력에 노출되는 끔찍한 입법 공백의 현실을 맞닥뜨리게 됐다. 이제는 34주 동안 다 자란 태아를 제왕절개술로 낙태해도 죄를 물을 수 없는 희한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예수님은 언제 이 땅에 오셨을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겠지만 실은 그로부터 9개월 전 작은 태아로 깜깜한 마리아 자궁 속에 오셨다. 주님이 육체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주일인 4월 첫째 주일을 생명주일로 지키자는 캠페인도 20여년 진행해 오고 있다.

왜 예수님은 어른으로 오지 않으시고 기나긴 9개월의 세월을 마리아 태중에서 보내셨을까. 그것은 작지만, 태아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예수님께서 친히 드러내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연약한 배아의 모습으로 마리아 태중에 잉태되신 태아 예수님을 골방에서 묵상한다. 죽음의 위협 앞에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노출된 수많은 태아를 위해 아기 예수님을 품은 마리아의 심정으로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한 주간의 생명묵상 기도주간을 제안한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가장 연약한 태아를 작은 예수님이라 여기며 그들을 지켜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온 교회가 경주할 것을 함께 제안한다.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은 정혼한 요셉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이유로, 당시 상황에서 얼마든지 낙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임신을 지속해 우리의 구세주가 탄생하게 됐다. 예수님도 낙태될 뻔했다는 아찔한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도 이미 아들 넷에 딸까지 있었던 터에 가난한 살림에 심장병으로 몸이 허약하셔서 얼마든지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쌍둥이인 나와 막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이렇게 생명을 누리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일 임신을 지속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물론이고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의 생명까지 이 땅에서 볼 수 없었을 터이니 이 또한 얼마나 아슬아슬한 순간이 아니던가. 어머니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 가장 작은 자가 누구일까. 아마도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는 자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연약한 자는 태아일지 모른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비춰보면 모든 태아는 바로 예수님처럼 소중할 수 있으며, 태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 그렇게 행하는 것이리라.

올해는 마침 4월 첫째 주일이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부활주일이어서 생명주일의 의미가 더욱 깊은 것 같다. 가장 작은 태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33년의 삶을 십자가의 형벌로 마치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이 마침 생명주일이니 얼마나 감사한가.

고난주간인 3월 마지막 주부터 생명주일인 4월 첫째 주일까지의 7일간 매일 한 끼씩 금식하며 태아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자. 또한 고난당하신 주님의 십자가 고통과 더불어 자궁 속에서 엄청난 폭력으로 숨져간 태아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이 땅에 죽음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태아들을 위해 기도하자.

아울러 낙태에 대해 방관하며 이에 대해 선포하거나 가르치지 못한 우리의 잘못과 스스로 낙태를 해온 죄악에 대해 깊이 뉘우치며 회개하자. 생명의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며 마침내 생명의 행렬이 죽음의 행렬을 뒤덮을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상은 박사 (안양샘병원 미션원장)

[낙태죄 개정이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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