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국민적 분노로 번지면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부동산 투기 근절’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상당수 법안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공직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고, 투기 이득을 환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LH 직원들의 땅 투기에 대한 소급 적용은 어려운 상황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처벌 수위만 과도하게 높이는 기계식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일 LH 임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 발의된 이른바 ‘LH 근절법’은 총 36건에 달한다.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14건)을 비롯해 한국토지주택공사법(10건) 공직자윤리법(7건) 부패방지법(3건) 도시개발법(1건) 개정안과 특정재산범죄수익 환수법(1건) 등이다.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투기 등에 악용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고 부당이익을 환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상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10년 이하 징역’(장경태 의원안) ‘1년 이상 유기징역’(문진석 의원안) 등으로 처벌 수위를 더 높였다.
LH 임직원을 비롯한 공직사회 전반의 ‘미공개 정보’ 활용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도 등장했다. 민주당 박상혁 조오섭 의원 등은 LH 임직원과 그 가족의 실거주 외 부동산 취득을 제한하고, 부당 이익에 대한 벌금과 몰수·추징 조항을 두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LH 사태가 공분을 일으키며 지난 8년간 국회 계류 중인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지위를 활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에 “21대 국회 들어 몇 의원의 심각한 일탈로 이해충돌방지법이 더 절실해졌다”며 “국회가 미적거린 결과를 지금 목도하고 있다”며 입법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렇게 쏟아진 각종 땅 투기 근절 법안 중에는 소급 입법과 과잉 처벌 우려도 거론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공직자가 50억원 이상 투기 이익을 거둔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심 의원은 “투기의 ‘투’자도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횡령·배임 등 다른 범죄와 비교하면 지나친 과잉 입법”이라며 “국민 감정이 들끓는 상황에서 처벌 수위만 높이는 단순한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LH 임직원에 대한 소급 적용 가능성도 해석이 엇갈린다. 참여연대와 함께 LH 땅 투기 의혹을 폭로한 민변의 김태근 변호사는 “형사처벌 소급 적용은 어렵지만, 투기이익에 대한 소급행정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도 “투기 이익이 실현되지 않은 경우(부진정 소급입법)의 환수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번 LH 사태에 적용하긴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LH 직원들이 땅 투기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이미 (적용 시점이) 완성된 것”이라며 “완성된 사실에 대한 형사처벌과 부당이익 환수는 진정 소급입법이라 위헌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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