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코로나 중증도 분류… 스마트 링으로 백신 이상 반응 체크

입력 2021-03-15 20:39
내달 AI 기반 환자 관리 본격 가동
사망·고위험 판정 알고리즘 개발
실시간 동선 파악 시스템도 구축
혈압·맥박 등 생체신호 24시간 확인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확충 필요성이 부각됐다. 21년간 건강보험 모델병원이자 보험자병원으로서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해 온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이 감염병 대응 스마트병원 구축을 통해 공공의료를 선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정·관계에서는 코로나 시대 보험자병원의 추가 설립 목소리도 나온다. 포스트 코로나, 건강보험 일산병원의 역할과 비전을 3회 시리즈로 짚어본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간호사들이 신분증 고리에 함께 장착된 신호 발생용 비콘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제공

현재 코로나19 대응 의료체계는 경증·무증상 환자들을 위한 생활치료센터→산소 치료가 가능한 감염병전담병원→중증환자 전담치료병원으로 이뤄져 있다.

지금은 보건소나 지역사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로 신고되면 의료진이 환자 상태와 추가 검사, 입원 치료 필요성 등을 일일이 따져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 판단한다. 대면 방식의 분류 작업에 적지 않은 인력과 시간, 비용이 들고 의료진의 감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은 이 작업에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입원 전에 코로나19 확진자의 감염경로와 인구학적 정보 등을 근거로 AI 알고리즘이 중증도와 사망 위험을 예측한다. 환자가 산소 치료 혹은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한지를 고도로 학습된 AI가 파악하고 적합한 치료시설을 자동 배정해 준다.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지능형 환자 관리가 가능하다. 이곳에선 대개 의사 1명과 몇 명의 간호사가 수 십, 수 백명의 경증·무증상 감염자를 상대해야 해 건강상태나 증상 악화 여부를 일일이 체크하기 힘들다. 대신 AI가 입소자의 여러 생체징후(biosignal)와 기초 역학 자료, 다양한 검사 소견을 결합해 증상 변화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한다. 입소자들의 혈압이나 심박동수 등 생체징후는 손가락에 끼는 ‘반지형 웨어러블(입는) 의료기기’로 실시간 감지한다.

AI 기반 환자 관리 가동

일산병원은 다음 달부터 이 같은 ‘AI 기반 감염병 환자 관리시스템’의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공공 의료기관에선 처음하는 시도다. 일산병원은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의 ‘감염병 대응 스마트병원’ 선도모델 사업기관으로 선정됐고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이달부터 시범사업을 통해 사용자 피드백과 오류 수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일산병원 오성진 보험자병원정책실장은 15일 “코로나19 상황에서 보험자병원으로서 역할과 기대가 더 커지고 있다”면서 “한정된 의료 인력과 자원으로 사상 초유의 감염병 사태에 대처하려면 스마트 솔루션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공병원으로서 4차산업 가속화 등 새로운 환경에 부합하는 확산 가능한 선도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측면도 고려됐다. 이번 스마트병원 선도모델 사업에는 용인세브란스병원 등 4개 대학병원들도 함께 선정됐다. 하지만 이들 기관들이 병원 내 스마트화에 집중하는 반면 일산병원은 지역사회 네트워크 기반의 스마트 감염관리 시스템 구축이라는 차별성을 두고 있다.

즉 현재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일산병원이 컨트롤타워가 돼서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 일대 보건소와 요양병원, 파주의료원, 생활치료센터 등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원격 협진’ 시스템을 구축해 감염병 안심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오 실장은 “그간 건강보험모델병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스마트 선도병원으로서 공공 의료의 선두에 서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코로나19 방역과 진료 비상 상황에서도 스마트 인프라를 빠르게 갖췄다. 먼저 코로나19 확진자의 사망 위험을 92%의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고 고위험자를 분류해 내는 AI 알고리즘을 최근 개발했다. 이를 적용하면 코로나19 확진 후 별도의 추가검사 없이도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 높은 환자를 빠르게 예측하고 분류해 부족한 중환자 치료에 필요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의료 사물 인터넷(IoMT·Internet of Medical Things)’을 기반으로 실시간 동선 파악 시스템도 구축했다. 의료기기 간 정보 전달을 인터넷을 통해 구현하는 개념이다. 그 중 하나가 실시간 위치정보시스템(RTLS)이다.

입원 환자의 손목에 채운 팔찌형 비콘. 비콘에서 나오는 신호를 병원 곳곳에 설치된 스캐너가 감지해 직원·환자들의 위치 정보나 동선을 신속·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제공

의료진을 비롯한 병원 직원은 물론 환자, 휠체어 등 각종 의료장비에 ‘비콘(블루투스형 신호 발생기)’을 부착하면 옮겨 다닐 때마다 병원 곳곳에 설치된 스캐너(신호 감지기)가 포착함으로써 정확한 동선과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감염병 환자가 발생해도 병원 내에서 연속적인 동선과 밀접 접촉자, 격리 대상자를 짧은 시간에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

일산병원은 이를 위해 비콘 3000여개, 스캐너 500개, 생체징후 측정 스마트 링(반지형 웨어러블기기) 500개 등 20여가지의 스마트 기기를 구입했다. 이런 스마트 기기를 활용하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따른 이상 반응 모니터링도 가능하다. 일산병원은 지난 10일부터 코로나19 치료 의료진과 종사자 등 2100여명의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이에 국내 처음으로 백신을 맞은 직원들에게 하루 동안 스마트 링을 손가락에 끼게 해 혈압, 맥박 등 생체신호를 24시간 체크하고 있다. 이상 징후 발생 시 즉시 문자 또는 전화로 건강상태를 살핀다.

병실 스마트화로 의료진 부담 감소

병실의 스마트화도 빼 놓을 수 없다. 스마트 생체징후 측정 디바이스(혈압계, 체온계, 수액 시스템)와 병원 의료정보 시스템을 연결해 환자와 의료진 간 실시간 소통 채널이 생긴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에게 주입하는 수액의 경우 지금은 간호사가 일일이 체크해서 갈아주는데, 스마트 수액 시스템이 갖춰지면 수액 소진 시간이나 공급 중단 등이 생기면 자동으로 알려준다”면서 “스마트 병실이 구현되면 비대면으로 업무가 자동화돼 의료진의 피로도와 부담이 확 줄고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 환자의 안전도 꾀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민감한 의료정보 활용이나 동선 추적에 따른 사생활 침해 우려도 없지 않다. 오 실장은 이에 대해 “직원이나 환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고 사생활 침해나 근태 관리 활용이 안 되도록 신경쓰고 있다. 또 의료 정보의 경우 감염병 상황에서만 조회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적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맥박 등 생체징후 측정이 가능한 반지형 웨어러블 기기(스마트 링)를 시연하고 있는 장면.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제공

스마트병원 구축으로 기대되는 효과는 3가지다. AI 알고리즘과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해 한 타임 빠른 환자 상태 평가와 재배치(적절한 치료 시설로 이송)를 함으로써 악화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또 병원 내 확진자 발생 시 신속하게 접촉자를 분리해 2·3차 감염 차단, 병원 폐쇄와 지역 내 도미노 확산을 막는다. 아울러 의료진 업무 부담을 줄이고 환자 치료 효율을 높여 평상시 진료와 비상 시 방역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오 실장은 “몇몇 대형 병원이나 신설 병원들이 홍보나 환자 유치 목적으로 접근하는 스마트병원이 아니라 공공병원을 포함한 전국 모든 의료기관들이 각자 여건에 맞게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목표이자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포스트 코로나 공공의료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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