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개발제한 고시 두달 전 ‘벌집촌’ 들어섰다

입력 2021-03-15 04:01
오송 국가산단 예정지인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서평리. 부동산 투기용으로 지어진 ‘벌집’들이 일렬로 들어서 있다.

지난 12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서평리와 동평리. 이 일대 6.75㎢의 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7년까지 오송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한 곳이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수십곳의 논에 나무가 심겨 있고, 60㎡ 안팎의 조립식 건물인 ‘벌집’이 30여채 들어서 있었다.

벌집 한 군데를 둘러보니 최근에 검침된 두 달 치 상수도사용량은 ‘0’이었다. 전기 계량기 역시 멈춰 있었다. 사람 사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인기척도 없었다. 토지 보상이나 ‘딱지’로 불리는 주택·상가 입주권을 노린 부동산투기용 건축물이다.

이곳에 벌집 건축허가가 떨어진 건 2017년 9월이었다. 이 시점은 충북도가 2017년 11월 이 일대를 ‘개발행위 허가 제한지역’으로 고시하기 두 달 전이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에 “지방에 대규모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직후였다.

벌집 건축허가 이후 11개월이 지난 2018년 8월 국토교통부는 ‘오송 첨단 바이오·뷰티 산업단지’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국가산단 대상 지역이 확정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개발정보가 미리 유출됐고, 개발예정지인 농지를 사들여 벌집촌으로 만들 계획이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오송 국가산단은 다른 신도시·산단 개발사업과 정반대의 절차를 밟았다. 보통의 경우 중앙정부가 개발계획과 개발대상 지역을 발표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이곳을 개발제한지역으로 선정한다. 반면 오송은 충북도가 부동산 투기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개발계획도 나오기 전 개발제한을 먼저 실시했다.

산단 개발이 시작되면 지자체는 시행사인 LH를 통해 해당 지역 토지 및 건물 소유주에게 토지와 건물에 대한 보상을 시작한다. 단순 토지보다 벌집과 묘목이 있으면 보상금은 몇 배 이상 올라가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충북도의 노력은 투기 광풍을 차단하지 못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투기꾼의 수는 정부·지자체보다 두 수, 세 수 앞서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발 앞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은밀히 유출되는 공공기관·LH발(發) 사전 개발계획 정보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오송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벌집 한 채당 건축비용이 2000만~3000만원인데 딱지를 팔아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다”며 “확실한 정보없이 누가 이런 살지도 못할 벌집을 짓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산단 조성지인 청주 넥스트폴리스도 마찬가지다. 예정지인 청원구 장성마을 곳곳은 40~190㎡ 규모의 벌집과 묘목으로 덮여 있다.

충북도청과 경찰은 이들 지역의 토지거래를 상세하게 들여다보는 전방위 조사를 진행 중이다. 도청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해당 대상자의 동의서를 받아 거래내역을 확보할 계획이다. 충북경찰청은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거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도 어떻게 개발 정보가 사전에 누출됐는지, 누구를 거쳐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를 밝히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청주=글·사진 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