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받지 못해 고아암이라 불리는 희귀암, 지원 연구 본격화”

입력 2021-03-16 04:07

“관심 받지 못하는 슬픈 암, 희귀암과 환자 지원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달 초 국립암센터에 희귀암연구사업단이 새로 출범했다. 사업단장을 맡은 국립암센터 김준혁(사진) 정형외과 과장은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희귀암은 흔히 접하는 위암 폐암 대장암 같은 호발암의 반대되는 말로 ‘고아암(Orphan cancer)’이라고도 불린다. 부모 없이 자란 고아처럼 보살핌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슬픈 암이라는 표현”이라고 운을 뗐다.

김 단장은 “발생률이 적다는 이유로 발병 원인 규명과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위한 임상 연구는 물론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도 우선 순위에서 밀려왔던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희귀암의 5년 생존율은 55.5%로 호발암(63.8%)보다 상당히 낮다. 국내에는 희귀암에 대한 분류 기준도 정립돼 있지 않다. 유럽 기준인 ‘인구 10만명 당 6명 미만 발생 암’으로 정의하고 있다.

2018년 중앙암등록통계에 의하면 총 61개 암종 가운데 45종이 희귀암으로 분류돼 호발암(16종)보다 훨씬 많다. 발생 빈도가 적을 뿐이지, 희귀암을 모두 합치면 전체 암의 약 4분의 1(23.7%)을 차지하고 연평균 발생자 수는 5만2000여명에 달한다.

김 단장은 “민간 의료기관은 희귀암에 무관심하고 연구개발이나 투자를 유인할 동기가 부족하므로 공공기관인 국립암센터가 당연히 해야 할 소임”이라고 말했다. 희귀암연구사업단의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으나 출범 노력이 지지부진하다 최근 취임한 서홍관 신임 국립암센터 원장의 결단으로 성사됐다.

희귀암의 분류 기준은 발생률 뿐 아니라 암의 해부학적 위치나 조직학적 양상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조직학적 분류에 따르면 국내에는 203종의 희귀암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8종은 서양에선 호발암으로 분류되는 등 한국과 해외 기준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피부암인 악성 흑색종의 경우 미국 등에선 많이 발생하지만 한국에선 드물다. 김 단장은 “인종, 환경, 유전적 차이 때문인데 면역 항암제 등 약제의 치료 반응도 달라지는 만큼 향후 우리와 외국의 서로 다른 희귀암 분류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앞으로 해야 할 일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먼저 다기관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을 구축키로 했다. 민간 병원의 참여를 독려해 희귀암 치료 임상 정보와 암 조직으로부터 얻은 분석 데이터를 모아 공유함으로써 연구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또 전이·진행성 희귀암 환자 대상 항암제 임상시험을 보다 활성화할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호발암의 경우 표적 항암제와 면역 항암제가 표준치료로 자리잡은 지 오래됐지만 희귀암에서는 치료 근거를 제시할 연구에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임상시험에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

김 단장은 “다행히 최근 첨단재생의료바이오법이 발효되고 허가 초과 항암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가는 추세”라면서 “치료 보장성 강화나 희귀 의약품 개발에 대한 정책지원, 임상시험을 위한 제약회사 설득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많지만 지속적으로 필요성을 제기해 나가겠다”고 했다. 특히 희귀암 중에서도 발생 빈도가 높고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소아·청소년암(백혈병, 뇌종양 등)이나 육종암 등에 대한 연구 투자를 늘리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희귀암 환자나 보호자는 물론 일반인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희귀암종별 전문 의료진, 치료 정보 제공 시스템 구축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그는 “그동안 국가암정보센터를 통해 희귀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이와 별개의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대부분의 희귀암 영역에서 전문의 숫자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비전문가에 의한 오진과 잘못된 치료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기관 연구 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희귀암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전달과 효율적인 환자의뢰 체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