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11일 홍콩 민주 진영 인사들의 공직 출마를 차단하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감시·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시행에 이어 중국의 홍콩 통제가 한층 강화됐다. 미국은 홍콩 선거제도 개편 시 추가 제재를 예고한 터라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인대는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3기 4차 전체회의에서 찬성 2895명, 기권 1명으로 ‘홍콩 특별행정구 선거제도 완비에 관한 결정안’을 의결했다. 반대는 1명도 없었다.
인민대회당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표결 결과가 공개되자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구체적인 개편 내용을 결정하면 홍콩 정부가 관련법을 개정해 시행에 들어간다. 지난해 같은 절차를 밟은 홍콩 보안법이 전인대 의결 후 약 한 달 만에 시행된 것을 감안하면 선거제도 개편안 역시 이르면 다음 달 시행될 수 있다.
리커창 총리는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홍콩 선거제도를 개편한 것은 일국양제의 제도적 보완과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는 원칙을 견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편안은 선거 출마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고위급 심의위원회 설치를 담고 있다. 행정장관 선거인단을 1200명에서 1500명으로 늘리고 이중 야당이 장악한 구의원 몫(117석)을 없애는 안도 포함됐다. 홍콩 의회인 입법회 의석수도 70석에서 90석으로 확대해 선출 방식을 조정한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가 선호하는 인물이 홍콩의 입법 및 행정을 장악하게 되는 셈이다. 범민주 진영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홍콩에선 오는 9월 입법회 선거, 연말 행정장관 선거인단 선출, 내년 3월 행정장관 선거가 예정돼 있다. 홍콩 행정장관의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버나드 찬 의장은 전날 한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행정장관 선거인단과 입법회 선거가 치러지길 희망한다”며 “입법회 선거가 이미 1년 연기됐기 때문에 또 다시 연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콩은 지난해 9월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범민주 진영의 과반 확보 가능성이 커지자 코로나19 확산을 명분으로 선거를 1년 연기한 바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전인대 표결 하루 전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우리는 홍콩에서 일어나는 지독한 인권침해에 관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선거제 개편 문제는 오는 18~19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리는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도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