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몸으로… 남성 중심사회에 균열 가하다

입력 2021-03-14 21:15
한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페미니즘 미술을 출발시킨 윤석남·이불 작가가 동시에 전시를 하고 있다. 위 사진은 윤석남 작가가 재현한 독립운동가 남자현의 초상으로 학고재갤러리 개인전에서 볼 수 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윤석남(82)과 이불(57). 나이에선 세대 차이가 나지만 둘 다 같은 시공간인 1980년대 말∼90년대 작가 인생을 출발했다. 페미니즘으로 자신의 존재를 미술계에 알렸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이불이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전공인 조각의 남성성을 형식적으로 비트는 작업에서 출발했다면 전업주부로 지내다 불혹의 나이에 화가가 된 윤석남은 가부장적 현실을 서사적으로 풀어낸 구상 회화로 시작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두 사람이 각각 지금의 모습과 처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를 하고 있다.

먼저 윤 작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윤석남: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전(4월 3일까지)은 여성주의 미술을 지속해온 작가의 가장 최근 작업이다. ‘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가 14인의 초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전시는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몸을 던졌지만, 남성 중심의 공식 역사에서는 거세되거나 주변화된 여성들을 초상화를 통해 당당히 재현한다.

“내 가진 돈은 모두 249원 80전이다. 그중 200원은 조선이 독립하는 날 축하금으로 바치거라. (중략)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지느니라.”

이런 유언을 남긴 남자현(1872∼1933)은 영화 ‘암살’에서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의 모델이 된 여성이다. 유학자 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남편이 의병으로 나가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자 유복자를 혼자 키웠다. 이후 그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 1933년 일본 전권대사이자 관동군 사령관을 암살하려 시도했다가 거사 직전에 체포됐다. 교도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고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숨을 거뒀다. 또 간호사로, 의사로 활동했던 신채호의 아내 박자혜와 노동 운동을 했던 사회주의자 박진홍 등 우리가 잘 몰랐던 여성 전사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작가는 서양화 방식이 아니라 전통 채색화 방식을 변용해 이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런 제작 방식 역시 민족주의적 정서를 고양한다.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로 불리는 윤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소묘 하는 것으로 화가 인생을 열었다. 1982년 첫 개인전 뒤 1985년 김인순, 김진숙과 함께 ‘시월 모임’을 시작했다. 시월 모임은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출발로 평가되며 1986년의 제2회 동인전 ‘반에서 하나로’는 반향을 일으키며 그가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선보인 ‘손이 열이라도’ 등의 작품에서 보듯 가부장제 아래에서 차별받는 여성의 현실을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보여줬다. 이후 미국 유학 뒤 버려진 나무를 이용한 설치 작품 등으로 작업 세계를 확장했다.

사진은 이불 작가가 1990년 제2회 한일행위예술제에서 직접 만든 ‘소프트 조각’을 입고 일본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이다. 이를 포함해 그의 작가 인생 초기 10년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소개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불은 페미니즘 미술가를 자처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초기 10년간 보여준 궤적은 한국 페미니즘 미술사에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의 활동이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불-시작’전(5월 16일까지)에서 조명되고 있다. 전시는 이불 작가의 초기 활동 시기였던 1987년의 첫 개인전 이후 10여 년간 집중적으로 발표된 ‘소프트 조각’과 ‘퍼포먼스 기록’을 보여준다.

전시장 풍경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면 만나는 천장에 매달린 이상한 물체부터 그렇다. 촉수 같기도 하고 내장 같기도 한 것이 엉겨 있는 정체불명의 덩어리는 천으로 기워 만든 것이다. 작가는 저걸 뒤집어쓰고 도쿄 거리를 누비는 퍼포먼스(해프닝)를 했다. 그는 홍익대 조소과 입학 이후 전통 조각 재료인 돌과 철, 브론즈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하면서 천과 솜, 수공예적인 털 등을 재료 삼아 변주했다. 돌과 철 등이 갖는 단단함에 대비해 ‘소프트’하다. 이런 소프트 조각을 입고 퍼포먼스를 펼치며 남성 중심의 미술사와 남성 중심 사회가 구축해온 권위, 위계, 경계를 흔들었다.

두 번째 방에서는 그렇게 1990년부터 셀 수 없이 선보인 전시와 행위 예술을 기록한 영상을 보여준다. 자신의 몸을 미술 언어 삼아 발언했던 누드 퍼포먼스는 파격적이다. 낙태 경험을 고백하기도 했다. 방독면을 쓰고 군화를 신고 어깨가 과장된 흰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구겨진 신문지를 들고 ‘일’을 보는 몸짓을 하기도 했다. 미술기획자 김성원씨는 “페미니즘 이슈를 보여줄 때 여성 신체만큼 강력한 언어는 없다”고 말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