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쌈짓돈’ 막힌 뒤 사립유치원 500여곳 문 닫았다

입력 2021-03-12 04:03 수정 2021-03-12 04:03
교육부가 유치원들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한 이후 사립유치원 500여곳이 문을 닫은 것으로 파악됐다. 폐원 속출에 따른 유아 학습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폐원 조건을 까다롭게 했지만 종전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사립유치원들이 정부 규제를 피해 고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유아 대상 학원으로 대거 전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실태를 파악해 보기로 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1일 서울북한산유치원에서 ‘사립유치원 지원 및 공공성 강화 후속조치 방안’을 발표했다. 2018년 10월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 발표와 지난해 1월 ‘유치원 3법’ 국회 통과 등 일련의 사립유치원 개혁의 후속조치 성격이다.


교육부는 이번 방안에서 사립유치원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폐원이 급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가 공개한 사립유치원 폐원 현황을 보면 2016년 56곳, 2017년 69곳, 2018년 111곳, 2019년 257곳, 2020년 261곳이었다. 2018년 이후 껑충 뛰었다는 걸 알 수 있다(표 참조).

교육부는 유아 수 감소와 코로나19로 인한 휴업 장기화를 폐원 급증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만 3~5세 유아 수는 2015년 140만명, 2016년 138만명, 2017년 134만명, 2018년 130만명, 2019년 127만명으로 꾸준한 감소 추세여서 유아 수 감소만으론 2018년 이후 급증한 폐원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코로나19 여파도 2018년 대비 2019년에 2.3배 폐원이 증가한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유치원 개혁의 반작용이란 관측이 나온다. 교육부는 2018년 10월 국가관리회계시스템(K에듀파인) 의무화 방침을 내놨다. 유치원비가 원장 쌈짓돈처럼 쓰이는 관행을 뜯어고치기 위해 회계를 투명화한 것이다. 당시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강력 반발해 집단 행동에 나섰고, 일부에서는 “유치원 문을 닫고 학원 차리면 된다”는 대응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는 유치원들이 함부로 폐원하지 못하도록 폐원 기준을 까다롭게 재정비했다.

사립유치원들이 대거 유아 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아 영업하고 학부모들이 유치원을 찾지 못해 유아 학원으로 전환된 곳으로 자녀를 보내야 한다면 유치원 개혁 효과는 크게 반감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폐원한 유치원들이 이후 유아 학원 형태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지 파악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국·공립유치원이 늘어난 점도 사립유치원 폐원 급증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교육부가 공개한 ‘2018~2020년 국·공립유치원 학급 확충 현황’에 따르면 국·공립유치원 학급은 2018년 501개, 2019년 966개, 2020년 885개 늘어났다.

교육부는 사립유치원 지원책으로 누리과정 지원 단가를 인상하고(24만원→26만원), 학급 운영비도 확대하기로 했다(42만원→45만원). 사립유치원 교사의 처우도 개선한다. 기본급 보조를 인상(68만원→71만원)하고 육아휴직 시 신분 및 처우를 국공립 교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10년 이상 운영한 사립유치원을 ‘가업상속 공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다만 상속 개시 뒤 7년 이내 폐원할 경우 상속세를 내도록 할 계획이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