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랑공동체 사역들은 내 아들 은만이로부터 시작됐다. 왼쪽 볼에 임파선 혹을 갖고 태어난 은만이는 생후 4개월 만에 바이러스가 뇌로 전이됐다. 아들은 33년간 전신 마비로 침상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아빠 엄마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자유도 없었다.
은만이를 통해 완악했던 내 마음에 긍휼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생 병상에서 아픈 자녀를 간호하는 부모의 마음, 아기만은 살리고자 하혈하면서도 달동네에 있는 베이비박스까지 오게 된 엄마의 심정은 바로 내 마음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은만이와 30여년을 행복하게 살았다. 32세가 되던 2019년 2월 은만이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전신 마비로 양다리가 좌우로 뻗어있어 정밀 검사가 불가능했다. 은만이는 몸이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고통을 대신할 수 없어 마음이 찢어지고 아팠다.
의사는 하나님께서 은만이를 부르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몇 개월 후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은만이의 숨이 채 몇 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나는 2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서 공동체 일을 보고 있었다. 사무국장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운전대를 잡았다. 뒷좌석에서 울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은만아, 조금만 기다려다오. 주님, 아들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해 주세요. 은만아 안 돼.’
다행히 우리는 은만이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은만이의 눈을 마주하고 기도하면서 입맞춤으로 은만이를 주님께 보냈다. 주님의 품 안에 안겼는지 은만이는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2019년 8월 14일 33세 나이로 우리 가족에서 주님의 가족이 됐다.
온몸으로 눈물을 흘리는 동안 등 뒤에서 따뜻하게 나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제 됐다. 사랑하는 은만이를 직접 품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은만이는 어디 내놔도 사랑스러운 소중한 내 아들이었다. 주님께 보내고서야 알았다. 우리가 은만이를 돌본 것이 아니라, 은만이로 인해 내 완악한 인격이 변했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지금까지 내 삶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고백했지만, 나는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 내게 주어진 소중했던 선물 은만이, 나를 믿고 지지해준 아내와 큰딸 지영이, 무엇보다 나는 그런 길을 계획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길로 인내하시고 내가 약할 때 새로운 길로 이끌어주신 하나님이 다 하셨다.
지금도 종종 사랑하는 아들 은만이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 그러나 은만이를 통해 아직 내게 남겨진 일을 다른 은만이들을 위해서라도 멈출 수 없다. 은만이와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묵묵히 가고자 한다.
‘은만아, 아빠와 엄마는 네가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웠어. 사랑한다. 보고 싶다. 내 아들 은만아.’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