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데 손에 깁스를 한 할머니가 다가와 정중하게 손톱을 깎아줄 수 있는지 부탁해왔다는 글을 SNS에서 읽었다. 글쓴이는 흔쾌히 손톱을 깎아드렸고 답례로 행주와 율무차를 받았다고 했다. 요즘 이런 글에 유난히 울컥한다. 눈물이 그렁해진 눈을 옷으로 무심히 닦아내며 나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서울 명동에 갔다. 딱히 무엇을 사주면 좋을지 생각하지 않고 두리번거리다 내가 좋아하는 영국의 자연친화적 화장품 브랜드 매장을 발견했다. 들어서니 자연스레 입구에 서 있던 직원분이 나를 따랐다. 그의 친절을 다소 심드렁하게 받아들이며 이것저것을 냄새 맡고 손등에 발라보다 끈적해진 손등을 씻으려 매장에 비치된 세면대에 다가갔다. 그때 직원분이 ‘손 씻으시는 김에’라고 하면서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직접 스크럽과 컨디셔너를 발라주고 마사지해주며 성분들을 설명해준 뒤 손을 흐르는 물에 꼼꼼히 씻겨주었다. 내 손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타인의 손길을 보며 나는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기분이 머쓱해서 웃었다. 웃음 소리를 들은 직원이 내 손을 여전히 잡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점점 터치가 조심스러운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그냥 이런 접촉에도 마음이 찡해지고 그래요. 그게 좀 민망해서 웃었어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자 직원분은 크게 웃었다. 업무적인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의 선물을 다 고르고 포장을 부탁드리며 떠날 차비를 하는데 직원분이 말했다. “저 괜찮으시면 저희 매장 향수 코너에서 좀 더 놀다 가실래요? 안 사셔도 돼요. 그냥 보시다시피 매장이 너무 한가해서….”
나는 한참 뒤에야 매장을 나왔다. 여러 개의 향을 맡느라 머리가 조금 지끈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가올 나의 다음 터치가 줄 기쁨을 내내 생각했다. 생일을 맞은 친구의 따뜻한 손, 둥근 어깨 같은 것을.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