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행복한 청년이 되고 어른스러워지고 싶었습니다.”
2018년 2월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상현이의 일기는 이렇게 끝맺는다. 2006년 3월 또래보다 1년 늦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시작된 상현이의 학창시절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기다리던 날이었지만 엄마의 마음은 복잡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막상 학교를 떠날 때가 되니 졸업을 미루고 싶은 심정이었다…아이가 교복을 벗으면 더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아임 파인’은 세 살 무렵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 상현이가 스물 넷 청년이자 직장인으로 클 때까지 쓴 일기, 일기에 대한 엄마 이진희씨의 생각과 느낌을 담은 책이다. 아들이 써온 열다섯 권의 일기에서 146개의 일기를 골랐다. 자폐인 아들의 세세한 성장 기록이면서 “어디가 길인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마냥 두렵기만 했던” 초보 엄마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모자의 감동적인 스토리라기보다 “그저 하루 하루 뚜벅뚜벅” 걸어간 엄마와 아들의 일상에 더 가깝다.
엄마는 “다른 세계를 보듯” 무표정한 얼굴의 아들과 세상 사이에 끊임없이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오늘 점심 뭐 먹었어?’라는 질문에 ‘오늘 점심 뭐 먹었어?’로 답하는 아이를 위해 대답까지 같이 해버렸다. 그렇게 반복하던 어느 날 아이는 스스로 메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친척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절지에 가족 관계도를 모두 그려 수시로 물어도 봤다. 주위의 도움도 컸다. 일기에 일일이 반응해주고, 엄마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용기를 줬던 선생님들은 가장 큰 조력자들이었다.
일기는 엄마의 기억을 선명하게 하고,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아들을 더 잘 이해하게도 해줬다. 가령 엄마는 초등학교 때 아이가 뮤지컬을 보러갔을 때 들어가지 않고 떼를 썼던 날의 일기를 보고선 과거의 경험에 비춰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 날개에 있는 “때로는 고단하고 버겁지만 보통은 따뜻하고 행복한 일상”이라는 말처럼 둘의 일상이 담담하면서도 비교적 밝게 그려져 있는 책이다. 비슷한 처지의 부모에게는 앞서 길을 갔던 이의 구체적인 경험담으로 읽힐 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 엄마가 아들의 장애 진단을 처음 들은 과거의 자신에게 쓴 글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부모들에게 들려주는 현실적인 조언이면서 응원의 메시지로도 읽힌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