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철 전세자금 수요 폭발… 가계대출 사상 첫 1000조 돌파

입력 2021-03-11 04:02

가계가 은행에서 빌린 돈이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금융 당국의 ‘대출 조이기’에도 가계대출 증가세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달 신용대출 증가세는 크게 줄었지만, 대신 주택 관련 대출 수요가 늘면서 전체 가계대출은 1월보다 7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은행들이 대출금리 인상에 시동을 걸면서 가계 빚 부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2월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03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 말 500조원을 돌파한 지 8년2개월 만에 2배로 불어난 것이다.

2월 은행 가계대출은 6조7000억원 늘어 1월(7조6000억원)보다는 증가액이 줄었다. 다만 2월 기준으로만 보면 지난해(9조3000억원)에 이어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4년 이후 두 번째로 증가 폭이 컸다.

가계대출 가운데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잔액 733조3000억원)은 한 달 사이 6조4000억원 늘어났다. 역시 2월 기준으로 역대 두 번째로 많이 늘었다. 전세자금대출은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의 53%가량을 차지하는 3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박성진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주택담보대출은 전세자금 대출을 중심으로 높은 증가세를 지속했다”며 “전세자금대출 증가에는 전셋값 상승, 신학기 이사철 수요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 대출이 대부분인 기타대출은 전월보다 3000억원 느는 데 그쳤다. 1월 2조6000억원 증가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축소됐다. 이는 설 상여금의 가계 유입과 함께 주식시장 조정에 따라 개인 투자가 둔화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개인의 주식 순매수 규모는 1월 25조9000억원에서 지난달 9조600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박 차장은 “금융 당국의 신용대출 규제 및 은행의 자체 대출 태도 강화 등도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이날 별도로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의 2월 가계대출 증가액은 9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주택담보대출은 7조7000억원, 기타대출은 1조8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대출금리 인상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선 가계대출 금리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국고채 금리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국고채 3년물과 10년물 금리는 지난 1월 말 각각 연 0.97%, 1.77%에서 지난달 말 연 1.02%, 1.96%까지 올랐다. 이날 최종 호가 기준으로 10년물은 연 2.036%를 기록했다.

시중은행들도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의 우대금리를 떨구는 방식 등으로 실질적인 대출금리 인상 효과를 내고 있다. 여기에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이 1월 말 기준 69.7%에 이르고 있어 대출금리 인상이 곧 가계 부담 증가로 연결되는 상황이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