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크린으로 공포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한여름 밤 불 꺼진 교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고받는 괴담 릴레이가 아닐까. 이런 생각에서 MBC ‘심야괴담회’가 시작됐다. 11일 첫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 스토리텔링 챌린지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오싹한 괴담을 김구라, 김숙 등 스토리텔러가 소개하는 형식으로, 선정작에는 ‘액땜상금’ 44만4444원을 지급한다.
누군가는 참신한 예능, 다른 누군가는 흔한 토크쇼라 불렀지만, 프로그램을 기획한 임채원 PD는 심야괴담회를 문예 진흥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한다. 흔한 토크쇼를 참신한 예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공모 형식을 도입했다. 임 PD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 편성표를 보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에 동그라미를 친 기억이 선명하다”며 “PD가 된 후 시청자가 기다리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다짐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지난 1월 파일럿(2회)을 선보인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정규 편성 될 때까지 사놓은 팝콘을 먹지 않겠다’는 댓글이 등장할 정도였다.
매회 공모를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인 심야괴담회 역시 MBC 자체 공모전에서 2등에 당선된 작품이다. 임 PD가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공포물을 보면서 재충전을 했던 경험을 시청자에게도 전달하고 싶어 기획했다.
임 PD가 오래 몸담았던 ‘PD수첩’에서의 경험은 괴담을 예능으로 들여오는 시도에 한몫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여러 범죄를 다뤘는데, 특히 여성 대상 성폭력 사건, 아동학대 사건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천착했다. 하지만 시사 프로그램은 이런 범죄가 얼마나 생활에 밀접한 범죄인지 쉽게 풀어 알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가 예능에 도전한 이유다. 심야괴담회는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내기 위한 시사 프로그램의 확장판인 셈이다.
“귀신을 분석한 적이 있어요. 여성, 특히 처녀 귀신이 많았고, 아이 귀신, 노인 귀신이 많았죠. 생각해보니, 신분이 높은 귀신이나 부자 귀신은 많지 않더라고요. PD수첩에서 다뤘던 피해자 집단과 귀신이 된 집단이 일치하더라고요. 한(恨)이 많으면 귀신이 된다고 하잖아요. 사회적 약자들이 느끼는 억압과 공포를 괴담의 형태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중요한 건 감수성이었어요.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대한 혐오를 배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심야괴담회를 향한 자신감은 인터뷰 내내 묻어났다. ‘한여름=공포’ 공식을 깬 이유를 물었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한여름 납량특집으로 해야 시너지 효과가 커지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지만 기획안에 자신이 있었어요.”
토크쇼라는 콘셉트를 결정하기까지도 여러 고민이 스쳤다. 스토리를 담아야 하는 예능이라 재연 포맷이 더 유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유튜브나 아프리카 1인 방송 등 요즘 콘텐츠의 인기 요인을 살펴봤다. 그는 “이전까지는 재연이 친절한 연출 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크리에이터가 혼자 수다를 떠는 콘텐츠의 수요가 높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야기를 들려주듯 풀어내는 콘텐츠가 지닌 힘이 있겠구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심야괴담회 세트는 한 눈에도 ‘공포 예능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용의 대부분이 세트에서 이뤄지다 보니 특히 중요한 요소였다. 임 PD는 국내 시청자의 정서에 맞는 세트를 만들기 위해 영화 ‘사바하’ 등 국내 공포물을 참고했다. 으스스한 조명이나 음침한 안개 등 여러 세팅을 마쳤는데, 어딘가 부족했다. 그때 ‘물’을 떠올렸다. 서늘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딱이었다. 스튜디오에 물길을 만들면서 제작비를 탕진하다 보니 다른 소품 제작은 그의 몫이 됐다. 스튜디오에 붙어있는 부적은 임 PD가 직접 쓴 것이다.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제41조는 발목을 잡았다. 이 조항에는 ‘방송은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 태도를 조장하여서는 아니 되며 사주, 점술, 관상, 수상 등을 다룰 때는 이것이 인생을 예측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임 PD는 “공중파에서 자극적이고 잔인한 내용을 담을 수 없다는 점은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제약이 더 많았다”며 “더 무섭게 만들 수 있었지만 수위 조절을 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분명 파일럿 보다는 강해졌다. 임 PD의 “훨씬 더 무서워질 거예요. 벌써 떨린다면, 낮에 다시보기 하셔도 됩니다”라는 농담이 왠지 더 서늘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