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전년보다 13.9% 올리고, 2022~2025년엔 우리 정부의 국방비 증가율을 반영해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총액도 14% 가까이 올린 데다 이번엔 기존 관행인 물가상승률과 달리 그보다 높은 국방비 증가율을 적용함으로써 큰 폭의 분담금 증가를 야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우리 국력에 걸맞은 분담금’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우리 쪽에 유리한 협상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대북 정책에 급급하다보니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외교부는 10일 “한·미 양국이 지난 5~7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회의를 통해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을 최종적으로 타결했다”고 밝혔다. 11차 협정은 2020~2025년 총 6년간 유효한 다년 협정이다.
2020년도 총액은 2019년도 수준(1조389억원)으로 동결했고, 올해 총액은 전년보다 13.9% 늘어난 1조1833억원으로 책정됐다. 2020년도 국방비 증가율(7.4%)과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증액분(6.5%)을 더한 ‘예외적 증가율’이라고 외교부는 전했다.
2022~2025년에는 우리 정부의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이 적용된다. 예컨대 올해 국방비 증가율인 5.4%가 내년도 분담금 증가율로 반영된다.
외교부는 “6년간 다년도 협정을 체결해 안정성을 확보하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했다”고 자평했지만 전문가들은 “동맹을 갈취하지 않겠다던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기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게 분담금 책정 시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던 것을 국방비 증가율로 변경한 부분이다. 물가상승률을 적용하게 되면 통상 2~3% 수준의 인상률이 적용되고 4%를 넘기지 않는다. 이명박정부 때인 8차(2009~2013년) 협정은 2007년 물가상승률(2.5%)을 기준으로 했다. 박근혜정부 때인 9차(2014∼2018년)에선 첫 해만 5.8%를 인상하고, 이후에는 매년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인상하되 4%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을 정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타결된 10차 협정은 국방비 증가율(2019년 8.2%)이 적용됐다. 이번 11차 협정에서 물가상승률로 회귀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오히려 국방비 증가율로 못박으면서 지속적인 분담금 증액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방비 중기계획에 따라 2021~2025년 한국의 국방비는 연평균 6.1% 늘어난다. 이를 방위비분담금에 반영하면 물가상승률을 적용할 때보다 분담금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방위비분담금은 복리로 계산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매년 7%, 8% 이런 식으로 오를 것"이라며 "문재인정부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분담금이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증가율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실무 협상팀이 도출한 13.6%보다 0.3%포인트 높다. 총액을 대폭 올렸음에도 연간 상승률까지 기준을 변경해 인상해줬다는 점에서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그대로 수용한 셈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대사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위비 분담 수준을 만들었다"며 "단순히 금액이 아닌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협상을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 국력에 맞게 책임있는 동맹을 꾀하고자 한 것"이라며 "우리 국력을 반영하는 국방비 증가율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 배정을 '노력'에서 '의무' 규정으로 바꿨다는 점도 성과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일각에선 문재인정부가 임기 말 대북 정책에서 성과를 내려다 보니 사실상 다 내준 협의를 했다는 견해가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국방비 인상률 적용은 초유의 일"이라며 "북한 문제 때문에 웬만하면 (미국 요구에) 맞춰주라는 지시가 (협상팀에) 내려지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동맹을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평화와 번영의 린치핀(핵심축)이라고 하는데 그걸 강화할 계기를 만들었다"며 "동맹 복원의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1차 협정은 가서명과 대통령 재가, 정식 서명을 거쳐 국회 비준을 받으면 공식 발효된다. 길게는 2개월 정도 소요된다. 오는 17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방한해 가서명할 가능성이 있다.
김영선 임성수 손재호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