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 맞고 다시 현장” 요양병원 의료진 ‘백신 이상반응’ 진땀

입력 2021-03-11 04:04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30대 간호조무사 전모씨는 지난 9일 업무 중 환자에게 “세수하고 왔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얼굴을 손바닥으로 만져본 전씨는 그제야 자신이 쓰고 있던 마스크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것을 알아챘다. 그는 전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하고 나서 체온이 39.2도까지 올랐지만 병원에 출근했다.

전씨는 10일 “지난 8일 백신 접종을 받고 나서 다음 날 아침부터 고열에 시달려 타이레놀 2알을 먹고 버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날 밤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에 신세를 져야 했다. 전씨는 “1시간가량 수액을 맞은 뒤에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지만 병원으로 복귀해야 했다”며 “동료들도 다 같이 고열에 시달리며 어렵게 버티고 있는데 나만 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방역 당국에서는 고열도 경증이라며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식인데 현장 의료진에게는 그 며칠이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라는 게 전씨의 설명이다.

요양병원에서 백신을 맞고 고열이나 근육통 등 이상 증상에 시달리는 의료진이 쉴 틈 없이 계속 업무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기본 인력이 부족한 데다 교대근무로 돌아가는 요양병원 특성상 계획에 없던 휴가를 내게 되면 동료에게 업무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 직후 의료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의료진에게 집에서 충분히 휴식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구의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30대 간호사 김모씨도 지난 8일 백신을 맞았다. 그런데 접종 8시간 만에 40도 고열과 호흡곤란, 두통, 저혈압 등의 증세를 보였다. 낮 근무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집에서 쓰러지듯 잠을 청했는데 결국 그날 밤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김씨는 “저녁 시간이 다가올수록 몸이 점점 무거워지길래 내버려 두면 다음 날 출근도 힘들어지겠다 싶어 어쩔 수 없이 수액을 맞았다”고 말했다.

김씨도 동료들 모두 백신을 맞은 동등한 처지에서 ‘나만 힘들다고 쉴 수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근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접종 3일 차인데도 여전히 오한 증세가 남아 있다 보니 8주 뒤 다가올 2차 접종이 벌써 두려워진다”며 “기저질환 있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백신을 맞게 되면 어떻게 버틸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을 한 의료진에게 휴가를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1차보다 2차 접종 후 이상 증세가 심하다고 알려진 화이자나 모더나의 경우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 현장에서 지금보다 더 큰 업무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경증’이란 생명에 이상이 없을 정도의 증상을 의미하지만 현장 의료진은 여러 증세를 견디면서 환자를 봐야 하므로 의료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