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잠룡들의 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대선을 1년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급부상’까지 겹치며 더는 머뭇거릴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압박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사태가 ‘부동산 민심’ 폭발의 기폭제가 된 상황에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홍준표 무소속 의원 등 야권 잠룡들은 10일 일제히 목소리를 냈다. 21대 총선 대패의 책임을 지고 두문불출하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이날 정치 재개를 선언하며 전면에 나섰다.
야권 잠룡들은 공공 일변도의 정부·여당 부동산 정책이 LH 사태 근본 원인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유 전 의원은 ‘공공주도 개발’이 ‘공공 부패’를 낳았다고 LH 사태를 정리했다. ‘공공부패=독점+재량-책임’이라는 등식을 제시하며 “시장 경쟁이라는 햇볕을 쬐어 부패 곰팡이를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원 지사도 시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원 지사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며 공공과 시장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해야 부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무분별한 신도시 정책이 수도권 집중 현상만 심화하고 연결도로 신설과 전철 확장 등으로 예산만 늘어난다”며 신도시 정책을 아예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이 한날한시 목소리를 낸 데는 4·7 재보궐선거 이후 야권 재편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작용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윤 전 총장이라는 외부 인사들이 야권 재편의 구심점으로 떠오를 수 있고, 이전에 자신의 영향력을 형성해 놓아야만 향후 대권 행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 같이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윤 전 총장의 선택과 결심”이라며 윤 전 총장의 야권 진입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을 내놨다. 보궐선거 이후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누구도 선뜻 당권을 잡겠다고 나서지 않는 현 상황도 이 같은 ‘야권 대 격변’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황 전 대표가 “미력이지만 저부터 일어나겠다. 용기를 내겠다”며 정계 복귀를 알렸다. 황 전 대표는 “지금은 백의종군으로 홀로 외롭게 시작하지만 제 진심이 통해 국민과 함께 늑대를 내쫓을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며 “마지막 기회인 이번 4·7 재보선에서 모두 힘을 모아 정권의 폭정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황 전 대표의 이 같은 정계 복귀를 바라보는 국민의힘 내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다가올 11월 대선 주자 선출에 앞서 선거와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분이 자꾸 등장할수록 당이 변화를 위해 했던 노력이 희석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다”고 전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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