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할퀸 시대… ‘치유 사역’ 움트는 공동체 만들 것

입력 2021-03-12 03:05
이후정 감신대 총장이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대학 총장실에 있는 ‘평화’라는 내용의 족자 앞에서 화합하는 감신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감리교신학대학교(감신대)는 2019년 11월 이후정(65) 감신대 교회사 교수를 15대 총장에 선출했다. 이 총장의 임기는 지난해 2월 시작됐다. 감신대 졸업 후 미국 에모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총장은 1991년 감신대 교수에 임용된 뒤 교무처장과 신학대학원장, 대학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이 총장 선출 전까지 대학은 총장 선출을 두고 내홍을 겪었다. 갈등 끝에 선출된 이 총장은 깊은 상처를 싸매고 대학을 정상 궤도에 올려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취임 2년 차를 맞은 이 총장을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감신대 총장실에서 만났다. 총장실에 들어서자 ‘평화’를 한자로 쓴 족자가 눈길을 끌었다. 이 총장은 “오래전 선물 받은 글인데 오랜 갈등을 겪은 감신 공동체에 ‘평화’라는 글귀가 주는 메시지가 커 걸었다”면서 “볼 때마다 화합과 평화, 회복을 내세우는 총장이 되겠다고 다짐한다”고 소개했다.

-어려울 때 총장을 맡으셨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 대학이 큰 아픔을 겪었다. 학교 구성원 사이에 갈등도 컸다. 마음의 틈도 넓게 벌어졌다. 봉합을 위해서는 화합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대학은 목회자 양성기관이다. 인간의 방법 대신 하나님의 방법인 기도를 화합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취임 후 매주 금요일 오후 교수들과 서울 감람산기도원에서 기도회를 갖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남선교회 서울연합회가 매입해 감신대에 기증한 기도원에서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다. 교수 신앙 사경회를 매주 여는 셈이다. 기도로 갈라진 마음을 합하고 있다.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고 찬양하며 영성을 회복하고 있다. 오직 주님만이 감신공동체가 입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화합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감리회는 균형과 조화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감리교의 아버지 존 웨슬리의 신학도 균형과 조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1887년 개교한 뒤 긴 세월 감리교 목회자를 양성해 온 대학이 조화라는 정신을 잃었다고 본다. 임기 중 하나 되는 감신공동체를 만드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 화합의 증거들도 있다. 교수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빵을 만들어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전달한다. 갈라진 틈이 봉합되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화해와 평화, 사랑이 넘칠 것이다. 다툼 대신 용서가 가득한 감신공동체를 꿈꾼다. 웨슬리도 포용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았는가. 우린 그의 후예일 뿐이다. 따르면 된다.”

-최근 입시에서 감신대 학부와 대학원 모두 정원 미달이다.

“안타깝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게 첫 이유다. 동시에 교회 성장이 멈춘 게 신학대 지원자 감소에 결정적 원인이다. 어려운 시기에 다시 성장하기 위해 감신대만의 신학교육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고 본다. 목사가 지닌 무기는 성경이다. 목사 후보생들은 성경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성경을 깊이 해석하고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게 정원미달을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다. 더불어 영성훈련을 강화하려 한다. 교수들이 참여하는 금요기도회가 그 출발점이다. 좋은 교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올해 충원 목표는 10명이다. 물론 많은 예산이 든다.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 지난해 3500만원을 교수기금으로 기부했고, 올해부터 남은 임기 3년 치 총장 월급 중 십일조와 세금을 제외한 전액을 학교로 기부할 계획이다. 교원 확보를 위한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교수들도 십시일반 기금을 내 9000만원 가까이 기부했고, 매달 계속해서 기부하고 있다. 사랑과 헌신에 감동했다.”

-월급까지 반납해야 할 정도인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예산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총장이 솔선수범하니 지역교회들이 대학에 애정을 갖고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일 우리 대학에서는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와 발전기금 약정식을 했다. 만나교회가 7년간 매년 1억원의 기금을 대학에 전달하는 게 골자다. 이 기금은 석좌교수, 미디어 교육 지원, 향림설교대회 등에 사용된다. 선한목자교회(유기성 목사)도 매년 교수 한 명의 석좌기금을 기부해 주신다. 그 외 많은 교회가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교회가 거액의 재정을 신학교육을 위해 집행해 준 결단에 큰 감사를 드린다. 약정식에서 김 목사가 어려울 때 목회자를 훈련하는 신학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기에 기금을 전달한다고 했는데 가슴 뭉클한 말이었다. 이런 사랑이 감신대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확신한다.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참여도 대폭 늘려 가려 한다. 신학교는 학문과 영성을 함께 쌓아야 한다. 학문은 교수의 영역이지만 영성은 목회자가 전문가다. 훌륭하게 목회하는 선배들을 교수로 초청해 학생들이 그 지혜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지켜봐 달라.”

-코로나19 시대의 신학교육 방향은.

“팬데믹으로 온 세계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교회는 앞장서 치유하고 희망의 전달자가 돼야 한다. 초대교회가 그랬다. 세상의 빛으로 희망을 선물했다. 이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신학은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신학교육이 이성에 치우치면 합리주의의 늪에 빠져 길을 잃는다. 감성적인 데만 치중하면 공공성이 사라진다. 더불어 의지까지 겸비해야 한다.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룬 교육으로 인재를 키우더라도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코로나19 시대 신학교육은 ‘이성-감성-의지’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신교가 위기라는 지적이 많다. 정화가 필요하다. 출발점은 건강한 신학교육이다. 감신대는 목회에 방점을 찍고 조화로운 목회자 후보생을 양육하는 신학교육기관으로 성장해 나가려 한다.”

-코로나19 시대에 회복해야 할 영성이 있다면.

“코로나19가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모두의 표정이 우울하다. 감염병은 관계의 단절을 불러왔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고난은 축복의 가면’이라는 말이 있다. 고난 속에 깃든 축복의 조각을 찾아내야 한다. 하나님은 재난 속에서도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신앙인들은 암울한 현실만 탓해서는 안 된다. 고난 중에도 우리를 찾는 주님의 손길을 느껴야 한다. 교만을 버리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묵상하며 깊은 신앙을 경험해야 한다. 그게 바로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는 지름길이다. 불만을 내려놓고 경건한 삶을 회복하자.”

-총장으로서 비전을 소개해 달라.

“134년 동안 감신대는 주님의 거룩한 종을 훈련하는 선지 학교로서 사명을 감당해왔다. 총장에 취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과제를 생각해 봤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주의 종을 양육하라’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작년부터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모토로 세계를 이끌 지도자 양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감리교회를 다시 굳건히 세우는 게 궁극적 목적이다. 그 일에 감신공동체가 우선 이바지하려 한다. 더불어 세계적인 명문 신학교로 발돋움하는 기틀을 마련하고 싶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대학의 과제다. 그 일환으로 탈북자도 양육하고 있다. 한민족지도자과정도 뒀다. 모두 통일의 기틀을 닦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경기도 파주에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통일선교센터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복음통일의 출발점으로 쓰임 받고 싶다. 교수와 직원, 학생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건 가장 중요한 가치다. 한국교회를 개혁하고 새롭게 하는 회개·성령·사회적 성화의 본산으로 감신대를 가꾸려 한다. 치유하는 사역이 움트는 공동체로 만드는 바람도 크다. 코로나19가 할퀸 시대, 치유가 답이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