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락 (23) 비밀출산법 도입해야 미혼모·아기 다 살릴 수 있어

입력 2021-03-12 03:03
이종락 목사가 2013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12년 8월 시행된 입양특례법으로 많은 미혼모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오게 됐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입양특례법으로 생긴 문제에 대한 후속 조치나 보완 입법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강화하려 했다.

베이비박스에 오는 미혼 부모 98% 이상을 만나 상담한다. 아기가 입양돼 가정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설득한다. 그러나 출생신고가 없으면 대부분 시설에서 자라야 한다. 입양특례법이 가정 보호가 아닌 시설 보호를 부추긴 셈이다.

이로 인해 입양이 80%나 줄었다는 학계 보고서도 나왔다. 반면 시설의 아기들은 80% 이상 증가했다.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동은 가정에서 자라야 행복하다.

한 해 미혼모 200명 이상을 상담하는데 출생신고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찌 이들의 눈물을 국가가 외면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웠다. 위기 미혼모와 아기들의 대변인이 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위한 1인 시위를 했다. 내게 악수를 청하며 관심을 보이는 국회의원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고군분투하다 태아 생명운동을 하는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이명진 소장과 인연이 닿았다. 이 소장이 내게 법률 전문가들을 소개해줘 비밀출산법의 골자를 만들 수 있었다. 2018년 4월 ‘미혼모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비밀출산법)이 발의됐다. 비밀출산법은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 운영 경험 전체를 반영한 법이다.

그달 일본 구마모토에서는 자혜병원 주최로 최초의 세계베이비박스 심포지엄이 열렸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12개국에서 참여했는데 한국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가 높은 관심을 받았다. 비밀출산법을 소개했더니 선진국의 좋은 법들만 모아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비밀출산법은 위기 임신으로 인해 아기를 키울 수 없는 경우, 가명으로 병원에서 출생신고를 해 바로 입양할 수 있게 한 법이다. 엄마가 직접 아기를 키운다고 하면 양육비를 제공하고 자립을 지원한다. 아기만 낳고 도망간 아버지를 끝까지 찾아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으면, 운전면허증과 여권을 취소하고 월급까지 압류한다. 20대 국회에서는 통과하지 못해 지난해 12월 1일 ‘보호출산법’으로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지난해 2월 베이비박스를 포함한 입양·학부모·미혼부부 단체 등과 함께 ‘지켜진 아동의 가정보호 최우선 조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위원회는 보호출산법 통과를 위해 한목소리를 외치고 있다. 이전에는 입양특례법 재개정과 비밀출산법 통과를 홀로 힘들게 외쳤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함께해준다. 애굽에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라는 명령을 받은 모세를 위해 하나님께서 말에 능한 모세의 형 아론을 예비하신 것처럼 말이다.

언제까지 이 험난한 고개를 넘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러하듯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신 일이기에 나는 그저 기도하고 말씀에 준행할 뿐이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