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현재 일본의 올림픽 관련 조직 수장은 모두 여성이 맡고 있다. 바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 마루카와 다마요 도쿄올림픽담당상(장관)이다. 지난 2월 모리 요시로 조직위 회장이 조직위의 여성 이사 증원을 반대하며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가 국내외 악화된 여론에 몰려 사퇴하면서 지금의 체제가 됐다. 도쿄올림픽담당상이던 하시모토가 모리의 뒤를 이어 조직위 회장이 되고, 남녀공동참여담당상인 마루카와가 도쿄올림픽담당상까지 겸하게 됐다.
역대 올림픽 개최국에서 올림픽 조직 수장을 모두 여성이 맡은 것은 일본이 처음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성평등은 갈 길이 매우 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높이기 위해 만든 남녀공동참여담당상 수장인 마루카와조차 양성평등을 상징하는 ‘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 제도’ 도입에 반대한 것이 최근 드러난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인 1898년 부부동성(夫婦同姓) 제도를 법률로 규정한 이후 결혼하면 남편이나 부인의 한쪽 성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아내가 남편의 성씨를 따르는 게 사회적 관습이다.
한국처럼 처음부터 부부별성제인 나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도 남녀평등이 자리 잡으며 결혼 이후 성을 스스로 결정하는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채택하고 있다. 즉 부인이나 남편이 상대의 성을 따라도 되고 원래 성을 유지해도 된다. 그러나 일본은 사회 기반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며 아직도 부부동성제를 고집하고 있다. 2015년에도 일본 대법원은 부부동성을 규정한 법률이 인권 침해이자 위헌이라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부부동성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커리어를 쌓아가는 도중에 이름을 바꾸는 것이 정체성을 잃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선 ‘사회적 죽음’으로 느낀다고 한다. 재혼하는 여성의 경우엔 부부동성제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선택적 부부별성제가 점차 남성들에게도 지지를 얻는 가운데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이후 지금까지 일본 사회를 달구고 있다. 지난해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대한 여러 매체의 여론조사에선 국민의 70~80%가 찬성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거의 모든 야당은 물론 자민당과 연립하고 있는 공명당도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과 정부는 오히려 퇴보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에는 5년간 정부의 양성평등 관련 정책의 방향을 담은 ‘제5차 남녀 공동참여 기본계획’ 원안에서 선택적 부부별성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과거엔 찬성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지지 기반인 보수층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몸을 사리는 듯하다.
우습게도 유명 아나운서 출신인 마루카와는 국회의원이 된 후 같은 자민당 의원 오쓰카 다쿠와 결혼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미혼 시절의 성을 사용하고 있어 더욱 비판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에선 마루카와가 남녀공동참여담당상은 물론 도쿄올림픽담당상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근대 올림픽의 역사는 스포츠 분야 성평등 확산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다. 1896년 제1회 때는 여성 선수가 한 명도 없었지만 점차 여성 종목과 혼성 종목을 늘려 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3년 올림픽 헌장을 개정하며 “성평등은 올림픽의 최우선 사항”이라고 못박았으며, 2017년부터 스포츠 분야 성평등 확산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성평등 리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