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2월 수술도 깁스도 하지 않은 채 휠체어를 타고 퇴원했다. 다행히 수술은 받지 않았지만 7월부터 꼬박 5개월을 병상에 누워 있어서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병원에선 재활과 요양이 필요하다며 최소 3개월 더 입원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목발을 짚던 첫날부터 내게는 오직 교회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퇴원하는 날까지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퇴원을 강행했다.
그렇게 어렵게 교회로 돌아왔지만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회는 말할 수 없는 시험과 분열을 반복하고 있었다. 교회를 다시 하나로 모으고 회복하느라 분주하던 어느 날, 단정한 정장 차림의 부부가 찾아왔다.
전에 충북의 한 교회에서 간증 집회를 인도했는데 그때 참석했다며 용건을 꺼냈다. 부부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서울 강남의 큰 교회 집사였다. 나를 자신들이 시작하려는 교회에 청빙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도사님, 왜 전도사님 같은 분이 여기에서 이런 고생을 하십니까. 우리 교회로 오십시오. 교회 앞 아파트에 사택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다리가 불편하고 체력이 많이 쇠약해지셨으니 가장 좋은 승용차를 준비하겠습니다. 교회에 전도사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그 부부가 돌아가고 나서 한동안 아내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아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겠는가. 친정으로 보낸 어린 딸을 데려와 마음 편히 잠들 한 칸의 방만 있어도 더 바랄 것이 없겠노라는 그 간절한 소망 말이다. 우리 부부는 그 소망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마음속에 삭인 적이 몇 날이었는지 모른다.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아내의 애달픈 눈빛을 뒤로하고 다시 강대상 앞에 엎드렸다. 뒤편에 앉아 있던 아내의 기척이 멀어지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분열 직전의 교회, 목발을 짚고도 제대로 걷기 힘든 육신.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울며 기도했다. 그리고 40일 아침 금식과 하루 8시간 기도를 작정했다.
마지못해 퇴원에 동의했던 아내도 이번 만큼은 허락할 수 없다고 울며 만류했다. 무릎조차 꿇을 수 없는 다리로 강대상에 엎드려 기도를 시작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예배당에서 아침을 금식하고 새벽 4시부터 정오까지 꼬박 8시간을 기도했다.
몸은 떨리고 부러졌던 다리는 마디마디가 시려 왔다. 한 달하고도 일주일째 접어들자 몸이 야위었다. 그러나 더욱 고통스럽게 한 것은 여전히 묵묵부답인 아버지였다.
8시간 기도는 거의 종일로 길어졌다. 37일째 되는 날 저녁, 울며 기도하다 밖으로 나왔다. 1월의 칠흑 같은 하늘에 희미한 별빛이 빛나고 있었다. 순간 오래전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보이던 별빛이 떠올랐다.
지붕이 없는 인천 어느 교회의 집회를 인도하던 기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신생중앙교회’라는 이름과 교회의 모습 말이다. 다시 예배당으로 내려와 기도했다.
“아버지, 살아도 죽어도 이곳 신생중앙교회를 지키겠습니다.” 39일째 새벽, 아프던 다리에 감각이 없어졌다. 나는 아픈 다리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몸부림치는데 두 손과 두 발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고통은 어땠을까. 십자가의 고난을 떠올린 나는 나에게도 이런 고난의 기회를 주심에 감사했다.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드니 십자가 위에서 잠잠히 나를 내려다보시는 주님의 눈빛이 느껴졌다.
40일 기도의 마지막 날, 눈앞에 마태복음 8장 23~26절의 갈릴리바다가 펼쳐졌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제자들이 흔들리는 배에서 무서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말씀으로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믿음 없는 자라 책망하시는 장면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주님께서 주신 신생중앙교회를 두고 잠시나마 다른 곳을 생각하고 변명했던 지난 39일의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통곡하며 한참을 울고 있는데 십자가를 지신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너는 분열을 일으키는 그들을 미워하지 말아라. 네가 미워하는 자들을 위하여 지금도 나는 물과 피를 쏟고 있느니라. 내가 네게 양을 맡길 때는 사랑받게 하기 위함이라. 너는 그들을 사랑하라.” “아버지, 믿음 없는 제가 죄인입니다. 사랑 없는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소서. 아버지, 저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나의 마음과 입술에서 찬양이 시작됐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마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다. 다시 한번 신생중앙교회와 석관동을 가슴에 깊이 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세워주신 이곳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