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는 중력이 있다. 여기서 중력은 꽤 적절한 비유처럼 느껴진다. 아니, 너무 적절해서 비유가 아닌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가난은 사과를 떨어뜨리는 중력처럼 필연적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지구의 질량처럼 우연적이기도 하다. 한번 가난의 중력에 휘말리게 되면 그 힘의 영역을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다.
빠져나오기는커녕 그에게만 손길이 뻗는 더 강력한 자력이라도 있다는 듯이, 자꾸만 바닥을 향하게 된다. ‘가난의 문법’은 바닥을 전전하는, 그러니까 도시의 바닥에서 폐지와 폐품을 줍는 노인의 가난을 다룬다. 가난한 노인은 이런 사람들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각자의 어쩔 수 없었던 사정으로 남은 게 없는 사람들, 사회보험 제도의 그물망 바깥에 있으며, 생계를 위한 자구책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 공고화된 도시 구조의 밑단에 자리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여성 노인은 유독 가난의 중력 한가운데에 위치하기 쉽다. 남성 노인이 여러 기회로 가질 수 있었던 사회적 경험과 경력이 그들에게는 없고, 체력적으로도 취약하며 숙련된 기술도 있기 만무하다.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생애 경로에 따라, 임금노동자가 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선배 세대 여성은 이제 사회 안전망의 바깥에서 폐지를 줍는 처지가 된 것이다. ‘가난의 문법’은 이런 처지의 구조를 윤영자라는 핍진성 넘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들여다본다.
폐품을 수거하는 노인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것이 가난의 상징임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화된 몸으로 리어카를 이끌고 박스와 헌책과 신문지를 모으는 모습은 여러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나 또한 저렇게 될 수 있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가난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자립하지 못할 수 있다. 누구도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나라님도 가난으로부터 개인을 구제할 수는 없다. 그렇게 젊은이들은 가난한 노인의 굽은 뒷모습을 보며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본인의 의지를 다잡는다. 그러나 의지는 불안의 손바닥이요, 불안은 의지의 손등이라 둘은 자주 뒤집히는 한 몸이다. 우리는 불안하다. 가난의 중력에 휩쓸려 바닥을 전전할까 봐.
그림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는 중력을 상당히 거스르는 이야기다. 동물이 사람처럼 움직이는 동화적 의인화에 대한 은유가 아니다. 당나귀 위에 개, 개 위에 고양이, 고양이 위에 수탉이 올라서 도둑을 물리치는 장면더러 하는 말이다. 아래로 끌어당기는 거대한 힘을 제어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준다. 늙고 병들었던 그들은 그리하여 보금자리를 도둑들로부터 쟁취할 수 있었다. 루리의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지금 시대에 맞게 다시 쓰되, 그냥 쓰지 않고 한껏 비틀었다.
당나귀는 나이가 많아 택시회사에서 잘린다. 바둑이는 일하던 식당이 이전하면서 쫓겨났다. 야옹이는 생긴 게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해고됐다. 꼬꼬댁은 두부 노점상을 하다 단속반에 걸렸다. 그들은 악기 대신, 방금까지 삶의 터전이었던 곳에서 받아든 사소한 먹을거리만을 든 채 터벅터벅 걷는다. 브레멘 대신 달동네로, 혹은 쪽방으로 가는 길일 터였다. 그렇게 브레멘, 아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둑들이 있다. 훔칠 것 하나 없는 그곳에서 도둑들은 넋두리에 한창이다 못된 짓도 쉽지 않아서 혹은 멍청하고 늙었다고 타박하는 보스 때문에 고민인 그들은 말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살걸.” 비슷한 처지의 동물들과 도둑들은 조우한다. 도둑들은 되묻는다. “당신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들은 의기투합해 한 끼 밥을 해먹는다. 만약에 멋진 식당을 차려서 운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상상일 뿐이다. 루리 작가는 그림형제의 후예이나, 그중 되바라진 편인 듯하다. 동물과 도둑 모두가 처한 가난의 중력을 성긴 낭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 논하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했는데도 가난할 수 있다는 것. 그 가난에서 빠져나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그림과 문장 곳곳에 위트와 예리함을 곁들여 표현한다. 제목대로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이 세계의 문법 아래에서, 브레멘에 갈 수 있는 사람과 동물은 아마도 절대적으로 소수일 것이다.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