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들썩이는 ‘제3지대론’… 윤석열은 ‘실패 흑역사’ 극복해낼까

입력 2021-03-10 04:03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등장으로 대선을 1년 앞둔 정치권에서 제3지대론이 다시 한번 들썩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높은 지지율을 동력 삼아 여야가 아닌 제3지대에 머물며 대선 레이스를 준비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과거에도 혜성같이 나타나 제3지대에서 대권을 노리던 후보들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중도하차했다. 여권의 집요한 공세를 버텨내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고공행진을 시작한 윤 전 총장이 과거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다는 기대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상반된 시각이 교차한다.

제3지대 후보는 역대 대선에서 단골손님이었다. 2007년 대선 당시 고건 전 국무총리, 2012년 대선 땐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2017년 대선에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등장했다. 각각 행정의 달인, 성공한 기업가, 외교 전문가로 자신의 분야에서 깊은 내공을 쌓아온 이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친 정치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9일 “여의도 정치권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야생과 다름없다면 공직사회는 온실 아니냐”며 “상대 세력의 정치 공세를 감당하고 이겨낼 능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2006년 11월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대선 도전 의사를 밝혔지만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실패한 인사’로 규정되면서 동력을 급상실했다. 결국 공세를 버티지 못한 고 전 총리는 2007년 1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안 후보 역시 2012년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같은 해 11월 후보직을 양보했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1월 지지자들의 환대를 받으며 귀국, 대선 행보에 나섰으나 “나쁜 놈들” 발언 등 구설로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지지율 하락을 견디지 못한 반 전 총장은 귀국 21일 만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권은 윤 전 총장도 과거 제3지대 후보처럼 결국 현실정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송영길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대기권에 진입하려면 6000도 이상의 열을 견뎌야 한다고 하는데 정치권이라는 대기권에 진입하기 위해서도 수많은 고열을 견뎌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윤 전 총장뿐 아니라 정치권 밖에 있던 고 전 총리, 반 전 총장도 정치에 들어오다가 ‘아 뜨거워’ 한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앞선 후보들과 달리 여권의 집요한 고사작전에 정면으로 맞선 경험이 있고, 권력 의지도 갖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 전 총장이 겪었던 검찰 이슈는 법적인 동시에 정치적 사안들이었다”며 “권력투쟁적 성격이 강했는데 버텨낸 걸 보면 정치인의 DNA가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현재 상황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과거의 제3지대는 여야의 틈새를 노렸다면 지금의 제3지대는 성격이 다르다”며 “반문으로 뭉치는 야당 재개편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고 전 총리는 노무현정부 말 여권 재편 움직임 속에서, 반 전 총장은 탄핵 정국 속에서 역할을 추구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른바 ‘반문’을 기치로 야권은 물론 제3지대까지 합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상황인 만큼 과거와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은 윤 전 총장 중심의 제3지대론을 신기루로 분석한다.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정치적 중립을 주장해왔지만, 결국 정치 한복판에 있었음을 자인한 셈”이라며 “명분이 있는 거냐”고 지적했다. 정치적 명분이 없는 만큼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윤 전 총장이 처가 재산 형성 의혹 등에 대한 거센 검증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